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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총결산 시리즈] 2022년 월별 정리

by 푸휴푸퓨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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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었고 30대에 안정적으로 안착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 해였다. 늘 같은 듯하면서도 조금씩 바뀌는 게 삶이다. 나는 혼자 성장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는 주변에서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지'하고 고착될 나이가 되었다. 매일을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어른. 어른이 되어버렸다.

Image by Ri Butov from Pixabay

 

1월

  묘하게 머릿속이 흐리고 기억이 짧아져서 마음이 산란했다.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며칠 명상을 했더니 개운하고 좋았다. 새해여도 딱히 설레지 않았는데 시간은 잘만 갔다. 운동은 꽤 열심히 했다. 다이어트는 모르겠고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보직이 바뀌었다. 바뀐 일상에 아빠가 잘 적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신차 계약을 했다. 아빠가 원하는 차종과 초보운전인 나를 위한 옵션을 더하니 상당히 거대한 차가 됐다. 이런 차가 첫 차가 될 줄은 몰랐군. 나의 부서에도 새로운 분이 오셨는데 업무 처리가 불편해져서 흥이 나지 않았다. 좋은 커피 머신도 들어온 건 덤.

 

2월

  새로 오신 분과 원래 있던 분까지 3월이면 나가버리신다는 이야기에 아연실색했던 달. 가마니 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니! 업무는 왜 줄지 않고 늘기만 하는지 알 수 없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 코로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니어서 의외였으나 엄마는 감기 철이니 당연하다며 의연했다. 감기가 순식간에 달아나는 나만의 루틴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그냥 훌쩍거리며 앓았다.

  남자친구가 생일선물로 갤럭시 워치를 주었다. 무엇을 받고 싶다고 말해야 할지 정말 오래 고민했다. 물욕은 없고 전(錢)욕과 주(宙)욕은 있다. 좋은 집에서 정갈하게 꾸며 놓고 누워있고 싶어라. 신선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3월

  결이 맞지 않던 분과의 업무 싸움에서 소소하게 이득이 생겼다. 이제는 정말 신입의 마인드가 아님을 실감했다. 지구에서는 진짜 전쟁이 터졌다. 21세기에도 침략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파국이 오기 전 끝나기를 바랐는데 한 달간 점점 악화되기만 한다. 쉽게 질 줄 알았던 나라의 선전과 우스운 줄 알았던 리더의 멋진 모습을 보며 희망을 생각했다.

  대선이 끝났고 새 정권이 집권하는 5년 내에 내가 집을 살 수 있을지 점쳐보았다. 열심히 재테크를 해야한다는 결론.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실력 상승은 모르겠고 영어로 떠들만한 환경이 생겼다는데 의의를 두었다. 15년 넘은 친구들과 5월에 사진을 찍기로 했다. PT 선생님은 이 기회에 다이어트를 하라 했지만 식단 조절은 하나도 하지 않아서 사진을 보내려니 영 멋쩍었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 가장 외출을 적게 하는 엄마가 걸려서 의아했지만 평소 가족 중 가장 면역력이 낮은 분이기도 해서 이해가 됐다. 4일간 삼시 세 끼를 차리고 출근을 하면서도 나머지 끼니를 챙겼다. 요리를 좋아하는데 밥 차리는 게 지겨우니 견딜 수 없었다. 내 인내심은 딱 3일짜리구나. 후에 가정을 꾸리고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삶은 별로 재미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엄마는 잘 회복하셨다. 1분기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4월

  더현대서울을 방문해 보았다. 그냥 커다란 백화점이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 싶었다. 산 중에 가장 비싼 티셔츠를 사 보았고 마음에 쏙 들었다. 호캉스도 했다. 그리고 코로나에 걸렸다.

  최근 몇 년간 아팠던 것 중 제일이었다. 최근이라고 말하기도 머쓱하게 아팠던 기억이 그닥 없으니 아마 평생 중 가장이었던 것도 같다. 역병에 걸리고 나왔더니 만개했던 벚꽃이 사라졌고, 곧 가게의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다. 1주일간의 격리 후에도 체력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2주가 걸렸다. 그래, 4월은 온통 코로나였다.

 

5월

  아빠는 급성위염, 남자친구는 음주 후 말실수가 지나갔지만 어쩐지 너무 피곤해 모든게 금방 극복됐다. 힘들 땐 차라리 바쁜 게 낫지.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내 옷 쇼핑을 했는데 너무 잘 도와주어서 또 한 번 반했다. 연애 유형에 대한 심리테스트 결과도 완벽하게 내 스타일이었다. 벌써 4주년인데 오래도록 매력 덩어리군. 처음으로 너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친구들과는 우정사진을 찍었다.

  전 세계 시장 상황이 나빴다. 이럴 줄 알았지. 낮아지는 잔고를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즐겁진 않았다. 견딜만한 금액만을 남겨두어서 타격이 크게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회사에서는 부서의 실장님이 긴 교육을 떠나셨다. 아바타처럼 일해왔던 터라 눈앞이 아득했다. 좌충우돌 일해야지 별 수 있나. 갑자기 vip 투어를 하고, 빈집털이를 당하듯 혼이 나고, 계약직 직원이 발령 나고, 상사의 이상한 발령 소식을 듣고.. 그냥 돌멩이처럼 구르며 버텼다. 6주가 순삭되기를 기원했는데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어쨌거나 시간은 간다.

 

6월

  아빠가 허리 수술을 했다. 통증이 심해지셔서 6월에는 200m를 걷기도 힘겨워하셨더랬다. 코로나때문에 문병을 할 수 없어 멀리서 응원만 보냈다. 엄마는 예전 간호사 시절에 보았던 척추 수술의 부정적 예후 때문에 많이 걱정했는데, 수십 년간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 일상으로의 적응이 남기는 했지만 모두 한시름 놓았다. 입원 첫 주말에는 형부가 올라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꽤 친해졌다.

  실장님이 안계신 동안 갑자기 실 투어 담당이 되었다. 아무 말이나 떠들었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안 난다고 말했다. 부서에 새로운 분이 발령 오셨다. 예상하던 발령은 아니어서 모두 깜짝 놀랐다. 반갑지는 않았지만 이러구러 적응은 했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발령을 냈는지 오랫동안 수상해 했다. 유명한 사람이 왜 유명한지도 오랜 시간에 걸쳐 점차 깨달아갔고.

  남자친구와 '나의 해방일지'를 보았다. 여러 인물에 완전히 푹 빠져 보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계속 보았는데, 사는 게 별 거 있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였다. 이런 폭력적인 배경의 드라마를 대중은 왜 열광하며 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7월

  아빠가 퇴원을 했다. 아빠가 일상으로 천천히 안착하시기를 바랐는데 아빠는 마음이 급했다. 재활이라며 걷기 운동을 너무 무리하게 해서 모든 가족이 걱정했다. 진심 어린 설득에 운동량을 줄였지만 또 무엇이 문제였을까. 7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셔서 응급실에 가셨다.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에 억지로 집에 돌아오셨다가 8월의 첫날에 또 병원에 가셨고, 담낭염이니 수술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무실에서 본격적으로 두 개의 태양을 모시게 되었다. 껄끄럽고 신경쓰여 사무실이 싫어졌다. 인사 발령이 나서 옆자리 선생님이 바뀌었다. 사무실에 정이 떨어져서 시간을 마냥 견디니까 내내 짜증이 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모두 모여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잘못이다. 지리멸렬한 일상, 습하고 더운 7월이 문제라고 억지로 탓을 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극장을 나오며 우와와 소리치진 않았는데 정신을 살펴보니 세련된 영화에 그만 폭 사로잡혔다. 어떤 감동은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어떤 감동은 잉크처럼 스며든다. 한껏 스며들어 감독과 배우,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8월

  아빠가 담즙이 나오는 관을 몸에 끼고 퇴원을 했다. 6주 후에는 수술을 해야 한단다. 예년과는 달리 1주일의 쉬는 기간에도 신이 나지 않아서 그저 집에 있었다. 여름에 의욕을 잃는 패턴이 자꾸 반복된다. 올해도 몸이 찌뿌둥하고 의욕이 소멸되는 기분이었다. 살이 쪘다.

  양모펠트를 처음 해보았는데 제법 귀엽게 마무리가 돼서 기분이 좋았다.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영화관은 그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다. 지겹고 지난한 일상에 남자친구의 존재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같이 있는 순간이 자주 행복했다.

 

9월

  자칭 수전노지만 너무 인색하게 살지는 않기로 했다. 주변에 작은 선물을 주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배웠다. 삶은 가고 친구들은 저마다 다양하게 살지만 여전히 서로를 소중히 여겨준다는 점이 고맙다.

  추석에는 남자친구와 자주 만났고, 중학교 친구들과 군산 여행을 아주 재미있게 다녀왔다(삼륜 전기 스쿠터를 타며 생사를 넘나드는 스릴을 즐겼다). 회사 동기들과 이케아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소파를 사고 싶다는 욕망에 허우적댔으나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잊었다. 매 주말이 아주 분주했다.

  아빠가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셨다. 당분간은 안 아프시겠거니 믿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언니와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보자고 의기투합해서, 둘 다 VLLO를 다운받았다. 잘해보자고!

 

10월

  가을이라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연말까지 서울둘레길 도장을 다 찍고 싶어서 매주 열심히 산을 다녔다. 다리가 아프고 남자친구보다 잘 올라가는 날도 없었지만 아무튼 포기는 하지 않았다. 둘레길을 다닌다는 내용을 넣어 유튜브에 영상 업로드를 시작했다. 블로그는 블로그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나를 표현하는 게 재미있어서 신이 났다. 언니와 오래 잘해보자고 약속했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빠가 은퇴를 하고도 모든 집안일은 엄마가 해내야 하고, 또 아빠의 온갖 간병과 시중을 드느라 엄마는 지쳐갔다. 아빠는 아빠대로 예전만치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느껴 화가 났고. 곪은 게 터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운 빠지는 집안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느꼈다. 집이 휴식이려면 구성원 모두가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걸 새삼 알았다. 우선은 공유주택 개념을 도입해서 각자의 일을 나눴다.

  남자친구의 정규직 전환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정규직 전환은 되지 않았다. 네가 통보를 받던 그날 아침, 나는 전환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받는 악몽을 꿨더랬다. 악몽이 현실이 되니 피가 식듯 몸이 싸늘해졌다.

 

11월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신이 났다. 지방간이 될 수도 있다는 2년 전의 소견이 깨끗이 사라졌고, 온몸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래도 관리랍시고 운동을 한 게 헛되지 않았군. 내후년에도 좋은 결과를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자친구가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우울해했다. 하루아침에 버려졌으니 기운을 내기 쉽지 않겠지. 원망을 했다가 자책을 했다가,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소갈딱지가 크지 못해 종종 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상황과 사람과 나까지 참아내는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티스토리 블로그가 먹통이 되는 사건을 겪은 후 영상을 만들다가 즉흥적으로 블로그를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영상과 연결되는 단문쟁이 페르소나를 새로 장착해 볼 생각이었다. 습관은 바꾸기 어렵던지 생각만큼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블로그는 개점휴업을 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이 블로그를 애지중지해 줘야지.

 

12월

  영상 조회수가 드디어 세 자릿수를 찍었다. 꾸준히 올라간다는 생각도 있고 주변 지인 몇몇이 열심히 스트리밍 해준다는 고마움도 있다. 이렇게 지지부진해서 어떻게 성장을 할까?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한 마음이다. 영상 만드는 일 자체는 몹시 재미있었다.

  살고 싶던 동네에 청약이 뜬다는 소식을 듣고 진지하게 넣어볼 고민을 했다. 손품도 팔고 실제 임장도 돌고, 정말이지 살고 싶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게는 가격이 조금 높았다. 고층으로 당첨되면 어떻게 감당할지 앞이 깜깜하지 뭐야.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과욕을 부리다가는 무너질 테니까. 엄마는 엄마의 사회초년생 시절처럼 내가 구질구질하게 살지는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청약 결과를 보니 넣었으면 무조건 당첨이었더라. 후에 이 결정을 후회할지 안도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12월 초부터 연말에 인사발령이 나면 2년간 따랐던 상사가 떠날 거라 했다. 새로 온 태양이 박혀있던 태양을 밀어내 버렸지. 나는 인사고과도 글렀고 어차피 발령은 나지 않을 거란 마음으로 회사에 더욱 시큰둥해졌다. 힘든 상사를 모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괴로워하다 우연히 마주친 좋아하는 실장님에게 만나서 나를 데려가달라고 징징거렸다. 타이밍이 좋았던지 그분이 나를 달라 윗선에 부탁했고, 갑자기 발령이 났다.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작이 펼쳐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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