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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총결산 시리즈] 2023 월별 정리

by 푸휴푸퓨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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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가 후임 덕에 3일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일이 아무리 많아도 그곳에 그냥 있고 싶었는데. 후임은 낡은 책 때문에 먼지 알레르기가 일어난듯 했지만 정확한 사유가 아니어서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어떻게 빠져나간 아수라장이었는데 다시 멱살 잡혀 돌아와야 하는거지. 탓할 곳이 없는 마음은 허공을 부유했고, 안타까운척 연기하는 상사가 준 싸구려 초콜릿은 우습기 그지없었다.

  몇 없는 친구를 모두 만난 달이었다. 저마다의 상황에서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도 어쨌거나 힘을 내고 있구나. 작은 행복을 소중히 하고 고통에 의연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평온하기만 한 삶은 없으니까. 나는 나를 이겨내야 하니까.

 

2월 (+1)

달리기가 뿌듯했던 한 달이었다. 1km를 넘어 1.5km가 거뜬해지고, 2km도 달릴 수 있게 되니 성취감이 뻐렁쳐 올랐다. 자세를 고치고 정신을 집중하면 기분이 좋았다. 훨씬 더 길게 달리면 러너스하이도 경험하게 되겠지. 2월 말에는 서울둘레길 정복도 다시 시작했다.

작년 1월에 계약한 차가 드디어 나왔다. 차를 사 본적이 없는 나에게 온갖 질문을 하는 부모님과 똑부러진 일처리를 해주지 않는 영맨 사이에서 분노 조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크고 하얀 싼타페는 예뻤지만 운전을 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꽤 괜찮은 자리에 남자친구가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 연락이 오지 않았다. 너도 나도 마음이 조금 무너졌다. 언제까지 막막함을 견뎌야 할까. 엄마가 남자친구의 계약 실패를 눈치챈듯 했지만 모른척 넘겼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3월 (-1)

  왜 아직도 이 부서에 갖혀있어야 하는지 화가 났던 달. 14일의 행사로 사무실은 번다하고 마음은 날카로워졌다. 신경쓰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내심 괴로웠는지 컨디션이 난조였다. 이 달의 월경이 말도 안되게 미뤄진데다 몹시 아팠던 것도 이 때의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자친구의 이직이 가능하기는 할지 마음이 자꾸 무너졌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믿어야 한다고 되새겼지만 국제 경제 사정은 계속 악화된다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보다 힘들 너에게 티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달리기와 점프를 같은 날에 하다가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어찌저찌 넘어갔더니 이번엔 발이 아팠고, 발은 쉬이 낫지 않아서 3주 이상을 신경쓰이게 했다. 나이가 들면 견딜 수 있는 무게가 줄어드니 결국은 체중 감량이 답이었다. 쉽지 않은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4월 (-2)

  남자친구가 이직에 성공했다. 회사가 탄탄한데다 그동안의 경력도 잘 쳐주어 연봉도 나쁘지 않게 받게 되었다. 상반기 안에 성과를 보여줄테니 기다려달라던 너의 말이 이렇게도 믿음직스러울 수 없었다. 너의 형은 드디어 결혼을 하셨고.

  대단한 상대와 전력투구하여 싸운 뒤 상처이자 치유가 될 발령을 얻었다. 과호흡이 오고 엉엉 울고 발작같은 화를 내고 벌벌 떠느라 밤을 새우고.. 앞으로는 이길 수 있게 판을 깔고 싸움을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지. 새로이 정착한 근무지는 번화가라 마음이 흥겹고, 맛있는 음식이 가까이 있어 행복했다. 이곳도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말도 안되는 공포와 불안은 없었다. 희망이 점철된 두려움을 안고 근무 경력의 새로운 단계에 입성하게 됐다.

 

5월 (-1)

  적응을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과부하에 걸려 고통 받았다. 그런 나로 인해 불편해 하는 상대를 느끼고 비로소 평범을 획득했다. 과하게 눈치를 보면 상대가 곤란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겨우 체득했다. 적은 수의 사람들과 매일 부대끼며 지내려면 적정한 거리와 예의를 지켜야 했고, 그 예의를 상대도 지키고 싶어했다. 놀라웠다. 상대가 예의를 지키고 싶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내게 당연하지 않아져 버렸다는 게. 아무려나 새 환경이 일상이 되도록 젖어든 시간이었다.

친구 Y가 결혼을 했다. D와 나 모두 남자친구를 데려와서 결혼식에 참석했고, 축사도 읽었다. 눈물 바람의 축사였지만 웃음도 나와서 오래도록 추억이 될 거라고 입을 떼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잘 꾸민 날을 놓치지 않고 커플 사진을 찍었다. 예쁜 기록이 남아서 마음이 흐뭇했지. 나는 언제 어떻게 결혼을 할까 싶고, 남자친구가 빨리 무언가를 진행하고 싶어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5월에 동기 언니의 아기를 보고와서 조급함이 심해졌다고 느꼈다.

 

6월 (0)

  실내 운전을 배웠다. 도로에 나가기 두려웠거든. 운전자들은 모두 반대했으나 비운전자인 엄마의 지지로 10시간을 등록했다. 가상 세계는 현실 세계보다 멀미가 많이 나고 부딪혀도 타격이 없었다. 운전이 너무너무 두려웠던 마음을 벗겨내 주어 고마웠다.

  새 근무지는 일이건 관계건 배울 점이 많았다. 동료 선생님들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든 사람간의 관계가 제일 어렵지만 하드트레이닝을 했으니 가뿐하다 생각하기로 했다.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득도한 자의 말에 감명받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다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 흐릿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체력, 효능감, 절제, 양질의 쾌락”이 내가 추구하는 일상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40대가 되고 싶은가? 10년을 내다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게 성격에 맞으니, 최선을 다해 상상하려 한다. 그래도 결론을 성급하게 내지는 않기로.

 

7월 (+2)

  Y의 집들이에 다녀와서 남자친구와 결혼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 너는 회사에서 자리를 더 잡고 싶다고 했고,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내려놓기로 했다. 출산에 대한 마음이 갈팡질팡 하면서도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감정이 치솟았었지. 그것만 내려놓으면 급할 것이 없어서 출산 욕심을 버렸다. 아기를 포기하니 자산 증식에도 조급함이 사라져서 미래의 나를 그리는 게 조금 쉬워졌다.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무한히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나 사이의 아기에게, 너를 정말 보고싶지만 너를 위해서 우린 만나지 말자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건네보았다.

  출장을 많이 다녔다. 체력적으론 힘겨웠지만 업무적으론 활력이 넘쳐 재미있었다. 의미를 모르겠는 삽질같은 업무를 살살 하는 것보다 결과가 확실할 업무를 세게 하는 게 적성에 맞았다. 운동을 덜 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인바디를 쟀더니 근육이 빠지고 지방이 올랐다.

  도로 운전 연수를 했다. 30년 경력의 아주머니 선생님과 열심히 서울을 누비고 다녔다. 도로 위에는 내가 모르는 약속이 많았고, 막히는 도로에서 힘겹게 배운 끼어들기는 이제 보니 칼치기와 비슷했다. 선생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며 땀을 뻘뻘 흘리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순식간에 운전왕이 되고 싶었지만 인생은 늘 단계별이지. 먼 훗날 능숙한 나를 상상하며 애썼다.

  갤럭시탭 S7FE를 구입했다. 카드 할인 조건을 따져 열심히 구입한 이틀 후 공식 홈페이지에서 내가 산 기종이 품절됐다. 그림을 많이 그릴 줄 알았는데 글씨를 더 많이 썼고, 펜촉이 이틀에 하나씩 닳았다. 메모하며 책 읽기나 강의 들으며 바로 필기하기를 시전했다. 단순한 영상 재생 기기로 전락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8월 (+2)

  일주일 간의 휴식이 있었다. 언니와 신나게 지냈다. 명절에 사촌과 헤어지듯 마음이 아쉬웠다. 언니가 결혼할 땐 전혀 서운하지 않았는데, 집에서 와글와글 지내다 예천으로 가면 가끔 서운한 기분이 든다.

  쇼핑몰 타이쿤이 하고 싶어서 의욕 있게 하루짜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20대와는 몸이 완전히 달라진 걸 실감했다. 끙끙대는 나를 위해 네가 더 고생했는데도 회복에 3일이 걸렸다. 지금은 다시 갈 생각이 없지만 두어달쯤 지나서 연락이 온다면 간다고 손을 들지도 모르겠다고 (돈에 눈이 먼) 도비는 생각하였다.

  본격적으로 청약을 넣기 시작했다. 당첨이 쉽사리 되리라 믿지는 않지만 마음은 진지했다. 여러 동네에서 산다고 상상하며 돌아다녔다. 당장의 여건에서는 청약이 가장 좋지만 내년 연말의 나는 무엇을 어떻게 쥐고 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시를 쓰려 시도해 보았다. 나름 기분이 괜찮아서 시 쓰기를 가르쳐주는 강의를 찾다가, 강연자와 수강생 인터뷰를 우연히 보았다가… 짙은 문학인의 향기가 나와는 맞지 않아 질겁하고 도주했다. 시 열정은 일주일만에 사그라들었다.

 

9월 (0)

  언니가 다리를 다쳤다.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언니를 다치게 한 언니의 친구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언니가 봐주라고 편을 들어서 할 말이 없었다. 보행이 어려운 언니를 위해 엄마가 고생을 했다.

  코로나에 또 걸렸다. 엄마가 언니의 간병을 하시느라 집에 계시지 않아서 혼자 회복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프면 왜 서러울지 상상이 갔다. 너무 힘들어서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컵라면도 먹었는데, 고칼로리 음식이 무색하게 기침하느라 살이 쭉 빠졌다. 물론 금방 다시 붙었다.

  코로나에 걸리기 직전, 우지끈 발목을 접질렸다. 못 걷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절뚝이면서 걷긴 하더라고. 주말에 이어 바로 코로나에 걸려 걸을 일이 없었더니 통증이 스윽 가셨다. 완쾌라 믿고 뛰어서 출근을 했더니 다리가 부어오르고 아팠다. 2주쯤 걸려 회복은 했는데, 오래 운동을 쉬어서 운동 루틴과 몸이 망가졌다. 회복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10월 (-1)

  경기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업체와 합이 맞지 않았다. 업무 방식도 소통 방식도 달라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싸우기도 해봤는데(싸운 것인지 징징댄 것인지 원) 결과물만 나오면 된다 믿으며 마음을 접기로 했다. 최소한으로 보니 좀 편안해 지더라. 출장지에서 며칠 가족과 묵기도 했는데, 능이오리백숙이 아주 맛있었다.

  운동은 골든타임을 놓쳐서 루틴을 아예 잃어버렸다. 몸에서 근육이 빠져나갔다. 퇴근하자마자 운동하러 가는 습관을 다시 들여야겠다고 억지로 생각했다.

  D가 내년 말에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상반기 Y의 소식을 들을 때보다는 충격이 덜했다. 자포자기한 기분이 들었는데 포기가 아니라 경로가 다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힘에 겨웠던 10월에는 삶을 머리에서 약간 내려 놓았다. 그래도 시간은 잘만 갔다.

 

11월 (0)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말 오래간만에 남자친구와 여행을 다녀왔다. 진심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살면서 이런 행복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면 인생 한 번쯤 살아봐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지금의 내 분수보다 좋은 숙소에서 묵었는데, 좋은 게 무엇인지 경험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을 어디까지 원할까?

  한 달 간 힘들었던 경기도 프로젝트가 끝났다. 끝나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일 없던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출장을 다녔더니 평일 내내 사무실에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내가 한가해 보이는지 동료들이 이런저런 일을 넘기고 싶어했다. 적당히 받고 적당히 행동했다.

  운동이 하기 싫어 몹시 게으름을 부렸다. 살이 쪄서 반지가 작아졌다. 이러면 안되는데 생각하면서도 집에 와 누우면 좋았다. 저녁 체력이 사라지는 게 체감되자 진짜 큰 일이다 싶었다. 몸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몇 년 운동의 결과가 아닐까. 나름 뿌듯했다.

  올 해의 제주도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제주도에 또 갈 일이 생겼다. 기대가 부풀었다.

 

12월 (+1)

  제주도로 마음을 다잡는 캠프를 다녀왔다. 말이 캠프지 휴양이라고 여겼는데, 돌아보니 각성이 제대로 됐다. 조금 놓고 있던 마음이 확 붙잡아졌다. 자산 정리를 확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했고, 매일을 정산하기로 했다. 타이트하면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즐거웠다.일상이 촘촘해져서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올해는 이런저런 외부의 일로 힘들었다. 그 핑계로 나를 놓아버린 느낌이 있는데, 2024에는 조금 독하게 나를 챙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올해가 힘들었던 건 어쩌면 그 이전의 한 두 해가 너무 나른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에게 지독하게 굴지 않기로 했지만 해야 할 말도 하지 않는 건 별로라는 걸 몇 년 만에 알았다.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억지로 촬영하는 브이로그를 대신해서 평소 좋아하는 낙서를 활용한 콘텐츠를 계획했다. 무엇을 올릴지 계획하면서 설레어서, 24년의 활력소가 될 예감이 든다. 물론 블로그도 계속 확실히 끌고 갈 생각이다. 아카이빙의 미학을 알아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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