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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7

2023.11.28. 악마같은 나를 무심코 사내 시스템의 인적사항 탭을 눌렀다가 최근의 승진 순위를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무려 후배보다도 낮은 고과를 받았다. 사기업이라면 정리해고 1순위가 될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4월의 나는 상사와 싸웠고, 5일이나 연차를 냈다. 쫓기듯 먼 부서로 발령이 났다. 많은 걸 예상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상상력이 부족했다. 더 참았어야 했을까. 자꾸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싸움에 서툴러서 멋지게 이기지는 못했다. 나를 밟은 사람은 기관장과 함께 승승장구하고, 나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까 싶었던 상사는 자신의 자리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해 뼈저리게 아파하던 시간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 2023. 11. 28.
2023.11.12. 제주 넷째날 조식을 먹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바다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후에 보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지막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벌써 아련했다. 남자친구와 함께면 평범하게 흘러갈 시간에 의미가 새겨진다. 대단한 게 없어도 소중한 시간. 여행 전부터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할지 고민했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안을 세우지 못했다(귤 따기 체험을 미리 해버린 탓도 있지). 남자친구는 맛집이나 일정에 얽매이지 말고 편히 시간을 보내다 가자고 했다. 너는 사진에 흥미가 없고, 남들이 좋아하는 맛집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자연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집안퉁이 방구석여행자 둘은 남들 따라 하려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내내 깨지 못한 게임을 깨기로 했다. 가까운 중문 스타벅스에 걸어갔다. 걷는 30분 남짓을 신나게 낄낄댔다... 2023. 11. 20.
2023.11.11. 제주 셋째날 시에나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메뉴였다. 골프복을 입은 중년 손님이 많았다. 리조트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손님이 많아도 붐비거나 지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이나 음식에 크게 감흥이 없는 남자친구도 시에나 리조트는 마음에 들어 했다. 식당을 나오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챙겨 왔는데, 마셔보니 콜드브루였다. 나도 꼭 돈 많은 중년이 되기로 결심했다. 귤 따기 체험을 운영하는 카페가 많았지만 제대로 된 체험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며 2000평 귤 농장을 예약했다. 도합 3kg을 딸 수 있었는데, 그게 얼만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제주도의 버스는 시간표가 무색하게 제 멋대로 왔다. 택시를 타고 언덕을 올라갔더니 넓은 농장이 있었다. 귤은 생각보다 금방 땄다. .. 2023. 11. 17.
2023.11.10. 제주 둘째날 시에나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었다. 사람이 몰릴까봐 8시가 되기 전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멋쩍게 앉아서 음식을 퍼왔는데 글쎄, 이제까지 먹어봤던 호텔 조식 중 가장 훌륭했다. 전부 먹어 치우고 싶었지만 위 용량에 한계가 있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남자친구와 음식의 퀄리티에 연신 감탄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러 갔다. 산책로 계단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가 있었다. 바다 앞이어서인지 바람이 무지막지 불었다. 이 예쁜 곳을 함께 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파랗고 햇빛은 좋고, 바람이 떠밀어주는 듯 걸으면서도 신이 났다. 이런 둘레길을 찾아낸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있는데,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는 급하게 회사 일을 해야 했다. 숙소에 맡겨둔 노트북이 필요하단다. 둘레길의 한.. 2023. 11. 16.
2023.11.9. 제주 첫째날 공항에서 10시 1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네가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머리까지 잘 손질한 너는 여행이 기대되어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서 같이 아침이라도 먹을 줄 알았는데, 눈치 없는 나는 시간을 잘도 맞춰 가버렸지. 여행에 설렌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시간이 나만 기대되는 건 아니구나. 착륙하는데 떨린다며 서로 손을 꽉 잡았다. 택시를 타고 미리 찾아둔 음식점 ‘취향의 섬’에 갔다. 제주도는 노란 귤이 한껏 열리는 시기였고, 남원읍은 더 그랬다. 취향의 섬은 손수 시공한 인테리어가 정말 멋진 곳이었다. 고사리 파스타와 흑임자리조또, 옥감자춘권을 흡입했다.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너와 올레길을 조금 걸었다. 제주는 무려 20도여서 기.. 2023. 11. 14.
2023.11.6. 쫄딱 젖으면 개운하게 씻으면 돼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종종 우울했고, 몸이 붇는 걸 느꼈고, 무기력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저녁이 허다했다. 그 와중에 내 답보상태를 정리하는 글을 써보기도 했다.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운동을 해야 해. 피곤한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나를 방치하면 몸이 나빠지고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법이다. 알면서도 몸이 무거워서, 머리가 지끈거려서, 귀찮아서 미뤘다. 먹기 위해 입은 쉴 새 없이 놀렸지만. 몸도 마음도 팅팅 불었다. 지난주 금요일, 괴로웠던 업무의 한 단락이 끝나고 마무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기원했지만 일이 뭐 내 마음대로 되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서.. 2023. 11. 6.
2023.11.6. 10월 중 홀로 경기도 왕복 운전 성공을 기념하며 나이를 먹다가 갑자기 한 살 후진을 해서일까, 요즘 기분 상태가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내가 몇 살인지도 계산이 어렵고 서른 이후로 마냥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이 갑자기 치밀 때가 있다. 나를 달래며 지난 3년 간 답보상태인 것과 성취한 것의 목록을 적어본다. 답보 목록 1. 몸무게: 몇 년째 제자리걸음. 올해 좀 결실을 보나 했는데 코로나+발목 접질림으로 몇 달간 쌓아 올린 루틴과 몸을 싹 잃었다. 진심으로 한심하다. 2. 업무: 편해서 좋았지만 해낸 것은 없었던 지난 부서의 생활이 2년. 좋지 않은 모양새로 지금 부서에 넘어온 것도 패배자의 뒷모습. 업무적으로 2020년의 나와 2023년의 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조금 더 노련해졌을까. 덜 당황할까. 스스로 .. 2023.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