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더러운 꿈을 꾼다. 1년에 몇 번이니 아주 가끔은 아니겠다. 구체적으론 똥이 나오는 꿈을 꾼다. 말도 안 되게 많이 싸기도 하고, 싸면 안 될 타이밍에 마려워 죽겠기도 하고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의 똥꿈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똥통과 있어도 냄새를 모르겠거든 이건 꿈이구나 하며 마음이라도 편해지면 좋으련만, 꿈에서는 필사적으로 으악 똥 똥 하며 황망해한다. 변비도 아닌데 왜 자꾸 꾸는지는 잘 모른다.
이런 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몇 년 전 친구가 똥이 나오는 꿈은 행운이라고 한 뒤엔 나도 싫지 않게 되었다. 은근슬쩍 로또를 사 보기도 했다(물론 당첨은 없었다). 혹시나 행운이 지나갈까 싶어 아침에 눈을 뜨면 설렜다. 날아다니는 꿈을 꾸지 않게 된 뒤로 내게 설레는 꿈은 똥꿈 하나뿐이다.
주로 나의 똥에 대한 꿈을 꾸는데 어제는 흔하지 않게 남의 똥이 묻는 꿈을 꿨다. 이건 또 뭐래. 똥밭인지 똥더미에서 뒹구는 꿈이었다. 남의 똥은 싫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눈을 뜨곤 필사적으로 꿈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은 로또를 사야 해. 로또를 사야해. 동선에 로또 판매점이 없어 어디서 사야 하나 고민하며 일했다.
오후가 절반쯤 지난 시간, 너에게서 우울한 카톡이 왔다. 평소에도 하찮은 일에 분노를 폭발시키는 나쁜 습관이 있는 상사는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는데 결국 빌미를 줘버렸다나.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시킨 데다가 삭선을 긋고 새로 쓰면 될 일이건만 그놈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는 이유 없는 고함을 들어도 말 한마디 못하는 거지 같은 현실에 속이 상했다.
네게 직장을 때려치우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난 겨우 시원한 맥주를 제안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니. 내 평생 너의 대나무 숲이나마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니. 그 어느 때보다 허겁지겁 퇴근을 하고, 약속 장소로 달려 나가고, 맛있는 걸 시키고, 너의 이야기를 듣고, 그놈을 마구 욕하고, 악담하고, 저주하고.. 그리하여 결국 네가 다른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영상을 같이 보며 웃고, 만나서 좋다며 손을 부여잡았다. 너를 위해 만났는데 내 마음이 더 말랑해졌다.
나는 결국 어제 로또를 사지 않았다. 어제의 행운은 너를 만난 일로 충분했다. 그렇다면 꿈속 남의 똥은 너의 똥 같은 하루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나와의 몇 시간이 네게도 하루의 행운으로 여겨졌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고, 오늘의 넌 눈이 일찍 떠졌다며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아마도 많은 일을 미리 해둔 뒤 상사의 앞에 서고 싶은 것이겠구나 하며 나는 모르는 척 새나라의 어린이를 칭찬하였다. 내 삶의 행운인 너에게 나도 똥꿈같이 맥락 없는 운을 퍼부어주고 싶다. 청년이여, 나의 똥밭에서 굴러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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