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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140

[Book Review] 잡지의 사생활 - 박찬용 고등학교 3학년 때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하는 장래 희망으로 '잡지 에디터'를 기입한 적이 있다. 늘 선생님 혹은 사서를 적었더랬는데, 고3이 되고 보니 사범대나 문헌정보학과보다는 점수가 좀 남는 게 아닌가.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던 '프로젝트 런웨이'와 '도전 슈퍼모델'은 패션과 화보라는 화려한 세계에 대한 나의 환상을 마구 부추겼던 터였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면 된다고 했다. 옷은 잘 모르지만 글은 좀 쓰고 싶어 하니 피쳐 에디터가 되어야지. 늘 고전적인 모범생이었던 내가 평소의 나를 탈피하고 적었던 그 꿈은 공식적으로 남아있지 않다. 파일로 정리된 생활기록부를 나누어주며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에 쓸데없는 것 써 놓은 사람은 내가 적당히 바꿨다"고 말했다. 나를 똑바로 보고 한 말이.. 2020. 5. 6.
[Book Review] 매우 초록 - 노석미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즈음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연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조용한 곳에서 홀로 수행하듯 살면 마음이 편안할까 궁금하다. 하지만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 딱 노석미 작가가 일구어낸 삶만큼의 고요를 원한다. 우연찮게 노석미 작가의 책을 읽은 후부터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담백한 삶을 소망할 때면 특히. 집을 짓고 이사를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나의 집은 이미 서울에서 한참을 강원도 쪽으로 나와 있는 즈음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강원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강원도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녔다. 마지막에 바다에 도착해서 바다를 보고 맛있는 게도 사먹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집이 많.. 2020. 4. 29.
[Book Review] 미루기의 기술 - 존 페리 코로나 덕분에 상당히 게을러졌다. 출근 외의 유의미한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지경으로 취미도 소소한 재미도 사라졌다. 시간을 보내고 보내고 보내다 보내는 시간이 숨을 옥죄는 기분이 들 때쯤 발견한 책이다. 작가는 철학과 교수인데, 교수가 일을 미루면 고통받는 위치에서 일하는 나는 가끔 발끈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즐겁게 읽었다. 미루는 사람의 성격을 유쾌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미루는 사람의 성격이 대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마감 시한이 촉박한 일을 중요한 일로 간주하기가 쉽다. (부지런쟁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마감 시한이 정말 촉박하게 느껴지는 건 정해진 날짜가 1-2주쯤 지난 뒤부터다.) 이보세요. 마감을 잘 지키는 건 부지런쟁이가 아니라 그냥 약속을 잘 지키.. 2020. 4. 21.
[Book Review]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 제스 베이커 몇 년 전에 작성한 블로그 글을 가끔 둘러본다. 지금도 유려한 문장가는 아니지만 몇 년 전 문장을 보면 참혹한 기분이 들어서 때때로 글을 수정한다. 편집 에디터가 바뀌고 수정이 편리해진 것도 한 몫 한다(티스토리 고마워요!). 어제는 2012년에 쓴 ‘뚱뚱한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구조’라는 글을 손봤다. 정말 솔직하게 쓴 글이어서 당시의 마음이 그대로 보인다. 오래간만에 집중해 읽어보곤 마음이 아팠다. 20대 초반의 나를 지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꼭 안아 줄 거야. 네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도 말해줘야지. 하지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게 뻔하다. 뭐야. 20대 후반이 되도록 난 살을 못 뺐어? 심지어 더 쪘어? 한심하다 진짜. 살 가치도 없네.. 2020. 2. 14.
[Book Review]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 - 이충한 블로그 유입 경로를 늘 살펴본다. 절대적 유입량은 적지만 무엇이 검색의 앞머리에 있는지, 어느 주제가 요즘 관심사가 되었는지 보기 즐겁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꽤나 오래전에 올렸던 책이 유입 경로로 등장한다.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2015.8.30.)'. 막상 올렸던 2015년에는 전혀 유입 인자가 되지 못했는데 어쩐지 작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해당 글이 클릭된다. 이에 니트란 무엇인지 한 번 제대로 알아보고 정리해두기로 결심했다('빈둥빈둥' 저 책은 한 개인의 일상이라 객관적 정리라기엔 무리가 있거든). 이번 책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를 읽고 니트의 이미지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소감을 남긴다. 니트NEET는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 2020. 2. 10.
[Book Review] 생각을 빼앗긴 세계 - 프랭클린 포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내가 뇌 대신 이 작은 기계를 쓰는 게 아닐까 생각했음직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할 필요도, 언어를 열심히 배워 해석해 볼 필요도, 취향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작은 기계는 무엇이든 안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내용 이후] 6000만 줄이 넘는 페이스북의 코드는, 엔지니어들이 계속해서 코드를 더해온 결과 이제는 해독이 불가능한 고대 문서처럼 되어버렸다. (이것은 페이스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넬 대학교의 컴퓨터 과학자 존 클라이버그는 공저한 글에서, "우리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계를 만들었을 수 있다.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는 컴퓨터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그 기계가 .. 2020. 1. 7.
[Book Review]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 김나연 보수적인 여성입니다. 제목에 섹스가 들어간 책을 고르긴 쉽지 않죠. 제목도 그렇고 섹스 후에 우울하지도 않아서(?) 책을 발견하고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읽게 된 이유는 관심 있게 보는 책방 인스타에서 글쎄, 거기서 태동한 책이라는 거야. 오키로북스 감성이면 또 읽긴 읽어봐야지! 책장을 열었더니 눈길을 끄는 제목은 저자나 편집자가 쓴 말은 아니고 그리스 철학자 갈레노스의 말이라고 날개에 적혀 있다. 호, 그렇게 오랜 시간을 관통하는 말이란 말인가. 첫 번째 장을 읽으며 엄청나게 감탄했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고, 가볍지 않은 내용을 깔쌈하게 담은 글이었다. 추상적인 말 말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쓰라던 은유 작가의 말을 이 책을 읽으며 완벽하게 이해했다.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싶게 작가가 털어놓.. 2019. 12. 18.
[Book Review]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브로드컬리의 책은 발견한 시점부터 눈여겨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집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드디어 마침내 읽었지. 작은 서점의 생생한 일상이 궁금해 고른 책이었다. 그런데 앞뒤의 수많은 글자를 읽다보니 엥? 이게 잡지라고? 잡지 등록 번호를 보고 잠시 당황했지만 감탄이 나왔다. 그래, 잡지가 이런 판형일 수도 있지! 기존 잡지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너무 크다, 글씨가 콩알 같아 가독성이 떨어진다)을 다 없애버렸잖아. 생소한 판형만으로도 정말 마음에 들어서 다른 이슈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우리 도서관에서는 이걸 ‘단행본’으로 등록했던데, 나만 모른 건 아니었어 후후. 꽤 두껍지만 금방 읽는다. 왼쪽에 글자가 거의 없고 기본 글씨가 커서 더 그렇겠다. 이 이슈에는 서점을 운영.. 2019. 10. 11.
[Book Review]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 이본 취나드 파타고니아가 환경을 사랑하는 기업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읽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영감을 주는 사람일 수가 있나. 한 권 구입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절판이 되어버려서 중고 서적도 없었다. ‘이대로 도서관에 분실했다고 하고 배상을 할까’ 싶은 못된 생각을 처음 떠올려볼 만큼 소장 욕구가 드는 책이었다. Let My People Go Surfing! 두 보이즈(Do Boys) Q. 가장 힘들었던 등반은 어떤 때였는가? A. 아마도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취나드를 포함한 친구들과 레이니어 산의 카우츠 빙하에 갔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전에 빙벽 등반을 전혀 해본 경험이 없었고, 그들은 나에게 크램폰과 아이스 엑스의 사용법 30초 레슨을 해 주었다. 아주 경사가 급한 빙벽을 건너고 있을 때였다. 미끄러지면 .. 2019. 10. 2.
[Book Review] 공공 도서관 - 리처드 도슨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작품이 세상에 존재해서 너무 고맙고, 돈을 들여 한국어로 번역해 그 작품을 내게 전해준 출판사도 너무 고마운데, 대체 이게 많이 팔려서 출판사에 이윤을 남겨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책이 있다. 경제적 부분을 일부 포기하고서라도 사명감으로 책을 출간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지 주머니도 마음도 궁색한 나는 아직 상상이 어렵다. 다른 책을 많이 팔아서 비용을 좀 보탰을까. "공공도서관"은 진심으로 발행인을 만나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손을 붙잡고 흔들 책이다. 사진작가 로버트 도슨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도서관 사진을 찍은 작품집이다. 사이사이에 도서관과 관련된 여러 필자들의 에세이가 짧게 들어있다. 도슨의 사진 속 도서관은 놀랄만큼 다양하다. 웅장한 도서관이나 규모가 큰 도서관, 멋.. 2019. 9. 26.
[Book Review] 출판하는 마음 - 은유 인터뷰집 평범한 동년배들보다는 책을 훨씬 많이 읽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지금의 직업을 가질 길이 너무 협소해보여 그렇다면 출판사에 취직해볼까 한 적도 있다. 함께 공부한 많은 친구들이 출판사로 갔고, 나는 다시 언저리에서 기웃거리기만 하는 지금 ‘출판하는 마음’은 내가 바라던 세계의 여러 단면을 자세히 보여준다. 은유 작가가 썼으니 무슨 내용이더라도 읽었겠지만 출판업계의 이야기라니 심장이 쿵쾅거렸다(두근만 가지고는 모자란 파동!). 인터뷰이들부터가 (내게) 너무 핫하다. 김민정(흑흑 오은시인님 팟캐스트 나오신거 듣고 걸크러쉬 쩔었자나), 너구리 김경희(제가 오키로북스 인스타를 매일 봅니다 본다구요ㅠㅠ), 이경란(B컷 책.. 제가 북스타그램 시작한 계정의 첫 게시글이 이 책이엇쬬...), 박태근(허허 바갈라딘이라.. 2019. 9. 24.
[Book Review] 수영하는 여자들 - 리비 페이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휴가철이 다 지난 8월 말에) ‘2019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이란 제목으로 책 추천을 해주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내용을 살폈지. 흠, 이런 저런 책들이 있군. 쭉쭉 스크롤을 내려가며 재밌을만한 책을 골랐다. 도서관에서 당장 빌릴 수 있는 책들을 빌렸는데, 그 중 한 권이 ‘수영하는 여자들’이다. 짧게 읽은 줄거리로 볼 때 훈훈한 내용일거라 짐작했다. 실제 책을 받아보니 오옹, 표지도 귀여운데. 찬찬히 살펴보자니 출판사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구픽? 최근에 이 출판사 이름을 주목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영국에서 참 좋아했던 드라마 Vera의 원작 추리 소설(앤 클리브스의 ‘하버 스트리트’)을 펴낸 곳이잖아! 굳이 출판사 이름을 기억한 건 표지가 너무 센스 있어서였다(.. 2019.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