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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Movie + Book Review]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 아녜스 바르다의 말

by 푸휴푸퓨 202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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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특정한 문장과 부딪힌다. 어쩜 이 문장이 지금 내게 나타났을까 하며 횡단보도에서 갑작스레 마주친 양 깜짝 놀란다. 이런 우연을 겪으면 내가 읽는 책은 사실 하늘에서 수호천사가 내 상황에 맞게 내려주는 말이란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몇 달 전 '바르다가 만난 사람들'을 재미있게 본 후 바르다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교양 수업에서나 들었던 누벨바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는 그는 (나는 살아있는 줄도 몰랐던) 장 뤽 고다르의 집에 그가 좋아하는 빵을 들고 찾아갔었다. 고약한 프랑스식 농담인지 오랜 친구에게 고다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옛 친구를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흥분했던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글썽였다. 정수리 부분을 동그랗게 희게 남겨두고 바깥만을 염색한 독특하고 귀여운 머리를 한 채로.

  내가 좋아하는 '말 시리즈'에 그 바르다의 책이 나왔다고 해서 서둘러 구했다. 그런데 책이 너무 두껍잖아. 책은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편에 달하는 인터뷰를 담고 있다. 거장인 줄은 알았지만 고작 영화 한 편을 본 내가 이 책을 다 읽기는 무리여서 침대에 책을 팽개쳐두기를 며칠, 미니멀리즘과 관련한 인터넷 글을 읽다가 뜻밖의 이름을 발견했다. 응? 바르다가 도시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그것도 2000년에! 주말이 되자마자 서둘러서 다운받았다. 네이버 영화에 누군가가 (네이버에게) 이런 영화를 보급해주어 고맙다는 평을 남겨두었던데 진심으로 동감한다. 영화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밀레의 '이삭줍기' 그림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이제는 이삭 줍는 풍습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수확은 이제 기계가 담당하는 데다 더 이상 그렇게까지 줍지 않아도 음식은 풍요롭다. 그럼 남은 이삭은 그대로 썩혀도 될까? 이야기는 규격에 맞지 않는 감자를 줍는 사람, 부랑자, 시장 바닥을 뒤지는 잡지 판매인, 도시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활동가, 마트의 쓰레기통을 부수어 재판에 넘겨진 젊은이들과 그들을 신고한 마트 점장, 판사, 줍는 활동이 법에 어긋나지 않음을 설명하는 법조인, 폐품을 활용하는 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에게로 이어진다. 글쎄, 이 편에는 굶는 사람이 있는데 저 편에는 유통기한이 고작 하루 이틀 지났거나 판매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지다는 이유로 음식을 썩히는 사람이 있다.

줍는 이가 길을 따라 걸으며 
수확하는 이가 남기고 간 흔적을 줍는다. - 뒤 벨레

  영화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 중 두 명의 남성이 특히 인상적이다. 첫 번째는 프랑수아. 월급을 받아 살아가기에 굳이 쓰레기통에서 채집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길에서 얻은 물건으로만 생활을 이어가는 이 활동가는 사람에게는 관심없다며,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동물에게 훨씬 관심이 간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자연을 과도하게 파괴하는 바람에 동물이 피해를 보잖아. 그런가 하면 바르다는 우연히 시장에서 꾸준히 음식을 줍는 남자를 발견하는데, 인터뷰를 하고 보니 시설에 살며 벌써 몇 년째 이민자들에게 무료 프랑스어 강의를 하는 사람이었다. 바르다는 마지막으로 폭풍우 속에서 이삭 줍기를 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보여준다. 현대의 채집가가 사람들의 눈총을 견디어내며 음식을 줍는 모습처럼 그림 속 사람들도 참 꼿꼿하다.

  그런가 하면 영화 중간중간에 바르다는 자신의 늙은 손을 화면에 비춰준다. 정체모를 짐승이 된 것 같은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내 그 손으로 신나게 손장난을 치며 아이같은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 바르다는 쭈굴쭈굴한 할머니의 손과 천진난만한 아이의 표정, 채집가와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는 능숙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재능을 모두 갖고 있다. 

  영화를 다 본 후 '아녜스 바르다의 말'에서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의 내용이 언급되는 인터뷰 두 편을 읽었다(이 두꺼운 책에서 딱 그 부분만 보았으니 그 책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에게 이 글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겠다). 인터뷰는 또 어찌나 매력적인지. 이 책 전체를 진절머리나게 재미있게 읽고 싶어졌다. 바르다의 모든 영화를 다 찾아보고 싶다.

 

 

저는 '지금'에 무척 관심이 많아요. 지금의 사회, 지금의 내 삶, 내가 바라보든 상황들, 사방에서 목격되는 썩은 정치 현실까지도요.

  바르다는 장터에서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줍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채집가에게 바르다가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는다는 점. 상대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대화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책 속 인터뷰어도 바르다가 인터뷰 대상과 신뢰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평가하며 영화 속에서 감상주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르다는 그들과 자신이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줍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아이디어를 줍고 이미지를 줍고 감정들을 줍는 작업이에요. 저는 영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이 영화가 제작된 2000년은 영화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일이 새로운 시도였던 때다. 영화 속에서 바르다는 직접 디지털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여기저기를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 너머로 바르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작은 카메라는 인터뷰 대상이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따로 카메라맨이 등장하지 않고 바르다가 혼자 촬영할 수 있기 때문에) 바르다가 스스로를 직접 촬영하게 해 주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바르다의 소감이 어쩐지 유튜브의 큰 흐름인 vlog를 떠올리게 한다.

  촬영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촬영 대상이 되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재미있었어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린 주체가 되고 싶을 때도 있고, 객체가 되고 싶을 때도 있어요. 우린 모든걸 원하죠.

  영화에서 드러내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는 이제 종종 노화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70대의 바르다는 무슨 생각을 했나 했더니, 어휴. 너무 멋지잖아. 바르다는 켜켜히 쌓여진 멋진 나의 시간에 진심으로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와중에 그마저도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 모두에게 시간은 각각 다르다는 점도 짚어낸다.

(영화에 노화를 드러낸 부분에 대해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저는 칭찬에 목마르지 않아요. 개의치 않아요. (중략) 저는 사물들의 형태를 감상하는 걸 좋아해요. 제 자신의 형태도 포함해서요. 주름, 힘줄, 정맥, 아름다운 모습들이죠. 나무를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 오래된 나무를 보면 그 모양새가, 형태가 대단하잖아요. 그리고 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죠. "정말 근사한 올리브 나무네."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니가요? "정말 근사한 손이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우리가 마음속에서 느끼는 시간은 아주 주관적인 방식으로 작동해요. 이 영화에서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제 손을 보여주고, 머리칼을 부여주지만, 제 노화에 대한 저의 인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요.

영화에서나 인터뷰에서 바르다는 직접적으로 도시의 쓰레기가 어떻다거나 과도한 생산의 문제를 꼬집거나 채집자의 삶에 대한 판단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영상으로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관객인 나는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가 얼마나 자원을 불합리하게 낭비하고 있는지, 그 불합리함을 마치 합리적인 양 느끼면서 불합리의 틈바구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는지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라는 책도 떠올랐다(바르다가 인터뷰한 채집가와 같은 사람이 직접 쓴 책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이런 식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직 관련 컨텐츠는 없는 것 같지만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쓰레기라고 해서 서양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사는 도시는 종종 모든 것이 과도해서 숨이 막힌다. 바르다의 영화와 시각은 그러한 과도함을 산뜻하면서도 솔직하게 지적했다. '아녜스 바르다의 말' 뒷면의 김혜리 기자의 '존경받지만 투자는 못 받는 감독'이라는 말이 딱 와닿는다. 나도 바르다를 더 존경하고 싶어! 이삭줍기 영화의 속편도 있고 또 이삭줍기 영화가 72세의 바르다를 담았다면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은 80세를 기념하는 영화라는 소개를 읽어 그것도 보고 싶다. 차근히 하나씩 보면 인터뷰집도 좀 더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겠지. 바르다를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2019년 3월 먼 곳으로 떠나셨다는 작가 소개를 읽으며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안녕,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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