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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0.1.13. 마지막 말을 남긴 관계가 하나 더 늘었다

by 푸휴푸퓨 2020.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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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후반은 인맥이 한 번 정리되는 시기라고들 한다. 지리적 이유로 이어진 인연들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가 아닐까, 하고 20대 후반의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되니 어쩔 수 없지. 다른 성향을 억지로 맞대가며 만나려면 기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상을 살아내고 나면 기력이 남지가 않는다. 어쩌겠어, 끊을 수밖에.

Photo by  Zachary Nelson  on  Unsplash

  모이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괴롭고 머리가 아프던 모임을 빠져나왔다. 나까지 고작 3명의 모임이었지만 유일한 대학모임이었기에 오래 끌었다. 싫은 마음으로 마주하면 상대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몇 년을 싫은 채 나갔다. 나가고 나가고 나가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신년이잖아.

  한 번의 약속을 미룰만한 핑계 말고 근본적으로 인연을 정리하리라 결심했다. 그래도 10년의 인연이니 좋은 안녕을 하고 싶었다. 주말 내내 고민해서 만든 문장은 겨우 이것이었다.

2020년 신년을 맞아 저녁 약속을 줄이기로 다짐했어요.
모든 모임의 약속 횟수를 줄이고 있어요.
우리도 6개월에 한 번씩 만나도 될까요? 저 없이도 만나셔도 상관없어요.

  멘트를 들은 주변 사람 모두가 만나서 말할 수 있을 법한 말이긴 한데 이번 모임을 빠질 순 없겠다고 평가했다. 그럼 안돼. 난 이번도 싫단 말이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쓸만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지 않으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 난 언니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요. 언니의 화법이 지겨워요. 마주하면 자꾸 짜증이 나서 그냥 안 보고 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할 순 없잖아.

  나의 고통을 들은 회사 동기 두 명이 그냥 지르고 나오는 게 최선이라며 나를 움직였다. 하루 종일 좋은 말을 떠올릴 수 없어 괴로워하던 차였다. 괴로우면서도 그 괴로움조차 의미 없는 느낌이 들었어. 나머지 두 명은 별 생각이 없을 테니까. 불쑥 용기가 났고 개인 사정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는 도망치듯 카톡방을 나왔다. 내가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어안이 벙벙할 것 같기는 한데, 좀 미안하기도 한데, 그런데 나도 선택지가 없었다. 변명처럼 보여도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이 관계에 지쳐버렸어.

  미워서가 아니다. 다신 보고 싶지 않다고 이를 갈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시간을 나눌 이유를 찾지 못할 뿐이다. 미움 없이도 누군가와 연락을 끊을 수 있으리란 사실을 10년 전의 나는 알지 못했지. 남은 두 분이 나의 욕을 하고 있을지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게 무엇이건 나는 떠나고 싶다.

  안녕 여러분. 인간적으로 미안하기는 해요. 하지만 여러분에게 큰 타격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우리가 괜찮았던 시절도 있었고 그 시절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녜요. 하지만 소중한 게 그 시절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라는 게 저의 한계였어요. 게다가 두 분도 저와 마찬가지일 거라고 감히 확신이 들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잘 지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 마지막 말만은 진심이었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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