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ARY

2022.2.2. 연휴 동안 읽고 봤다

by 푸휴푸퓨 2022. 2. 2.
728x90
반응형

  연휴가 다 지났다.

  이번 연휴에는 읽고 있던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을 끝내고 이 책을 번역한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었다. 내가 겪은 뉴욕은 자본주의였는데 박상미가 사는 뉴욕은 예술이라 부러워 질투가 났다. 한 달간 뉴욕에 머물렀을 때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썼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글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박상미 작가는 요즘도 뉴욕에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의 이야기가 좋아서 도시 기획을 이야기하는 이원제의 '도시를 바꾸는 공간 기획'도 읽었다. 휴먼 스케일에 맞는 도시를 가꾸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늘 좋아하지만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방방 뛰지는 않았다. 그냥 이런 곳들이 있다며 담담한 나를 보며 코로나가 나를 많이 바꿔 놓았다고 느꼈다. 예전처럼 여행이 가고 싶지 않네. 호기심을 잃어가는 중일까.

  '세대주 오영선'이라는 소설도 읽었다. 나에게 집은 자본주의 그 자체로 보이기에 주인공의 초반 시선이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출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이고 집을 사는 건 시간을 사는 것이라는 익숙한 말이 소설에 나오니 재밌었다. 소설은 참 세태를 빠르게도 반영하는구나. 2~3년 후에는 영끌한 부부가 떨어진 집값 때문에 고통받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읽기만 한건 아니어서 본 것도 있다. 남자친구와 매즈 미켈슨이 나오는 '어나더라운드(DRUK)'를 봤다. 매즈 미켈슨은 잘생겼지만 감각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묘하게 서늘한 눈빛이란 감상은 내 편견인가. 서양인의 파란 눈을 보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경험과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허 운운하는 중년의 남성들은 묘하게 짜증을 유발했다. 이놈들이 공허하다고 징징댈 동안 부인은 애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해결책이 고작 술인 게 어리석어 보였고 누군가 죽는 결말도 썩 신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생의 지루함과 막막함,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나, 그로 인한 침잠의 감정이 공감되는 영화였다. 어쩔 수 없이 20대와는 다른 내가 되어 살고 있구나. 마지막 씬에서 매즈 미켈슨의 가벼운 몸놀림이 보기 좋았다. 원래 댄서였다며 남자친구가 알려주었다.

  그리고 넷플릭스를 봤다. 평소에 진득히 보기 어려우니 이럴 때나 좀 봐보자 하면서. 케이트 블란쳇이 좋아서 '어디갔어, 버나뎃'을 봤고 중학생 때부터 궁금했던 영화 '아멜리에'를 봤다. 어느 친구가 인생 영화로 아멜리에를 꼽았기 때문이었는데 오랜 시간 기대한 마음에 비하면 내게는 울림이 없는 영화였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생각나기도 했고. 프랑스 정서는 이런 건가. 아무 생각 없이 눈만 깜빡였다.

  재재가 나왔던 '방구석 1열'도 봤다. '프란시스 하'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이야기하는 편이었는데 다시 봐도 프란시스 홀리데이랑 나는 맞지 않는다. 휴, 이런 친구랑은 사귈 수 없다 생각하는 난 어쩔 수 없는 -재미없고 딱딱한- ISTJ인가. 패널들의 감상이 듣기 좋아서 혼자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조차 재미있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연휴의 마지막 밤을 '비하인드 허 아이즈'와 함께 보냈는데.. 그랬는데.. 두 군데서나 추천을 보고 6편밖에 되지 않는다기에 보기 시작했는데 끝은 더할 나위 없이 찝찝했다. 내가 원한 건 추리소설같은 드라마였다고! 심리 스릴러와 반전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 그 반전이 - 삐빅 삐빅 스포일러 알람 - 초자연 현상이길 원한 건 아니었다고요. 5화부터 반전이 추측되기 시작해서 기분이 언짢아졌는데 역시나 잠자리만 뒤숭숭해지는 음습한 결말이었다. 결말이 호불호가 강하다는 건 다 보고 나서야 알았네.

  여기까지 닿으니 연휴가 다 갔다. 콘텐츠를 향유하는 사이사이 방을 치우고 생각만 했던 바느질을 했다. 제로웨이스트샵에 병뚜껑과 테트라팩을 가져다주고 많이 먹었다.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남는 연휴는 아니었지만 상념이 없는 연휴도 아니었다. 다음 연휴에는 하나의 주제를 잡고 깊게 탐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할지는 다음 연휴가 되어 보아야 알겠지만.

 

넷플릭스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