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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22.2.24. 만 30살의 생일이 지나

by 푸휴푸퓨 202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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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뒷구르기 하도 봐도 30대인 사람이 됐다.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을 꺼두었더니 남자친구를 제외하고 친구 딱 한 명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사랑스러운 짜식. 카카오톡이 생기기 전부터 친구였으니 우린 참 오래도 만났다(이번 주 일요일에도 만날 예정이다).

  청년희망적금 가입 연령으로 보건대 나라는 나를 아직 청년으로 봐주는 듯 하지만 남보다 마음이 빨리 늙어버리는 애늙은이 인생 30년차인 만큼 이제 나를 중년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중년이 되었으니 중년에 걸맞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지녀야지.

  팔자주름이 깊어지는 것을 기념하여 얼굴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습관적으로 인상을 쓰는 데다 심술궂은 마음이 들 때면 팔자주름이 깊어지는 걸 알고 있으니 나를 위해서라도 마음보를 곱게 써야 한다. 남을 위해서 마음보를 곱게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마더 테레사가 되었겠지요. 아직 아무의 마더도 아니니 일단 나를 위해서 곱게 써보기로 한다.

  다른 사람을 깔보지 말자. 내가 옳고 저 사람은 틀렸다거나 뭘 모른다는 생각을 제발 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존감 대신 자존심을 치켜올렸던 10대의 내가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한다. 알면 뭘 얼마나 알고 읽으면 뭘 얼마나 읽었어? 너무 유혹적으로 펼쳐져 있어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옆 자리 동료 선생님의 낙서 노트에 나를 위한 진리가 쓰여있었다. '주변에 온통 이상한 사람만 많아지면 그건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미쳤네. 그간 현자 옆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단에서 압권인 문장은 뒤에 나왔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교수만이 존재한다. 이상한 교수와 더 이상한 교수.' 대체 교수에게 무슨 시달림을 당하신 거예요. 교수가 이상한지 본인이 이상한지 자아 싸움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의 생일은 언니와 명랑핫도그 핫볶이를 먹는 것으로 기념하였다. 무적의 백자매는 인간답게 먹자고 육성으로까지 다짐하였으나 떡볶이와 핫도그를 20분 만에 순삭하여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떡볶이는 보통맛인데도 맵찔이들에게 너무 매웠다. 이런 맵찔이의 배에 남아있기는 싫었던지 떡볶이는 그날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성급하게 언니와 나를 빠져나갔다. 생일 축하에 걸맞은 짜릿한 음식이었다.

  올해는 남자친구에게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하다 갤럭시 워치를 받았다. 있으면 나쁘지 않겠으나 없어도 썩 아쉽지는 않았지만 말을 해야만 하니까 억지로 물욕의 즙을 짰다. 내 핸드폰도 이어폰도 모두 남자친구가 사준 것인데, 이제 카톡도 문자도 전화도 씹을 수 없는 진동 팔까지 가진 사람이 되었어. 가족에게는 편히 현금을 받았다. 올해의 특이점은 형부에게도(!) 선물 포상금을 받았다는 거고, 매년 그 해의 첫 생일자인 나는 1년에 걸쳐 각각의 생일에 정확히 같은 금액을 돌려줄 예정이다.

  그렇게 생일이 갔다. 원래도 생일을 유난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가 지났을 뿐이고, 이제 덕분에 직원용 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다. Life goes on. 마음은 10대의 나와 다르지 않은데 어느새 중년인 내가 있다.

이거 먹고 너가 케이크 사준댔는데 추워서 둘다 홀랑 까먹어버렸지(코돈부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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