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169 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 6 - 1.5도씨 지독히도 대중교통 타이밍이 안 맞은 날이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재봉틀을 꺼내 셔츠원피스를 치마로 수선하느라 하루의 기력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직선박기도 손을 떨며 하는지라 간단한 리폼에 3시간이 걸렸다. 치마는 원하는 대로 완성되었는데 내 몸은 항아리 같은 것이 원하는 핏이 나오지 않았다. 이 대담한 핏이 오늘은 세상만사 내뜻대로 되지 않으리란 신호였나? 기력이 있건 없건 연휴의 계획은 빡빡해서 오늘 1.5도씨에 꼭 가야 했다. 1.5도씨(링크)는 신대방역 근처의 작은 제로웨이스트샵으로, 집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 갈 수 있었다. 모아둔 일회용품이며 우유팩, 멸균팩, 병뚜껑, 종이가방, 유리병까지 보부상처럼 이고 지고 나왔지. 나왔는데 버스가 저 멀리 가네. 다음 버스가 28분 이따 온다는 놀라운.. 2021. 9. 18. 레스웨이스트를 향하여 1 - 종이팩, 테트라팩 모으기 뭐든 재활용으로 내놓기만 하면 죄책감은 씻은 듯이 사라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이 재활용 선진국이라 믿던 시절도 있었지. 깨끗한 페트병이 없어 외국에서 재활용 페트병을 수거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태평양에는 한반도보다 8배 큰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있대. 알맹상점을 필두로 종이팩과 테트라팩을 모은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유팩은 종이팩이고 두유팩은 테트라팩이어서 둘이 서로 다른 자원이라는 사실을 30살 평생 처음 알았다. 테트라팩은 재활용 재질 중에서도 고급에 속하는 좋은 재질이란다. 새로 시작한 EBS 라디오 프로그램 '박진희의 공존일기' 타일러 편을 통해서도 테트라팩에 든 음료를 소비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내가 거의 매일 마시는 아몬드브리즈는 테트라팩에 담겨 있네... 2021. 9. 9. 내가 만족하는 미니멀라이프 실천 3 - 애착 물건 비워내기 정기적으로 방을 솎아준다. 정리할 물건은 많지 않다. 써서 비워야 할 물건과 비우지 않으리라 결심한 물건이 섞여있다. 그럼에도 계속 봐야 하는 건, 비우지 않을 것이 비울 것으로 옮아가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물건에서 애착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첫 취직 후 월급을 받게 되니 스타일리시한 쇼핑몰에서 옷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내게 W컨셉이나 29cm는 힙스터(!)가 쓰는 쇼핑몰이었다. 나도 이런 데서 사보자! 마음은 웅장한데 지갑은 얄팍해서 세일 상품만을 뒤졌다. 원래는 3만 원대였던 반팔 티를 만 원대에, 기모 후드를 2만 얼마쯤 주고 샀다(어째서 두 옷이 같은 계절에 사고 싶었는지는 따지지 않기로 한다). 나는 이제 3만 원도 넘는 티셔츠를 사는 사람이야! 자부심과는 달리 값비싼 목록.. 2021. 8. 30. 속는 셈 치고 P2P 투자 - 비플러스와 딱따구리 블로그에 재테크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지만 나는 재테크를 -나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P2P 투자도 하고 있는데, 돌아보면 폰지사기와 다름없었던 어느 P2P 회사의 붕괴 후 나는 P2P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두 곳의 투자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중 하나가 '비플러스'다. 최근 제현주 작가가 신간(돈이 먼저 움직인다)을 내고 임팩트 투자, ESG 투자에 대해 다양한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2년여 전만 해도 임팩트 투자란 말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듣기 쉬운 단어가 아니었다. 간단히 돈의 영향을 고려한 투자라고나 할까. 투자를 한다면 좋은 곳에 하고 싶었던 재린이는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고, 작은 플랫폼 비플러스를 찾아냈다. 다른 P2P 플랫폼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율을 제공했지만 투자하는 사업.. 2021. 8. 20. 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 5 - 플라프리 주변에 제로웨이스트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훈수 놓듯 말하기보단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편이 낫다. 빨대를 챙기고, 컵홀더를 반납하고, 두유팩과 병뚜껑을 모으면 옆에서 자연스럽게 도와준다.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지만 그렇게 시작해도 되지 않겠어.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나는 이미 내용을 다 알아도 가족이 읽었으면 하는 가벼운 제로웨이스트 책을 빌려두었다. 엄마와 언니가 읽었다.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물건 중 천연 수세미는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언니의 말에 옳다구나, 내가 사다주겠다고 나섰다. 관심을 보일 때 얼른 들이밀어야지. 어느 가게에서 사올까 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제로웨이스트샵을 찾아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알맹상점에 손님으로 다니시다 창업을 하신 모양이었다. 멋진데. 버스정류장 바.. 2021. 8. 8. 미니멀라이프란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튜브나 브런치에서 미니멀라이프, 제로웨이스트를 검색하며 다른 사람의 실천을 구경한다. 영감도 얻고 공감을 할 때도 많아 비슷한 내용을 보는 게 지겹지 않다. 보다 보면 점점 살림꾼의 집안을 구경하는 수준이 되는데, 정갈한 타인의 살림을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재밌다. 하지만 그게 미니멀라이프인지 의아할 때도 많다. 어릴적 한비야 작가를 좋아했다(2015년 이 글에서 고마움의 대상은 한비야였다). 그의 책에서 흔한 볼펜도 오지 여행을 가면 딱 한 자루이기 때문에 굉장히 아끼게 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껴 쓴다는 구절을 읽었다. 여행을 마친 뒤 돌아간 집을 선방처럼 해두고 산다거나 삶에 필요한 건 배낭 하나에 다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야기에 감명을 받은 초등학생은 샤프를 한 자루 정해 중학생.. 2021. 8. 2. 착하기보단 여유있을 것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스타그램을 넘나들다 발견해 조용히 동의한 문장이었다. 그럼 이제 나쁘게 살아야 하나요?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착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정말로 착한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회사에는 정말로 착한 사람이 있다. 유능하고 친절하고 환경을 사랑하며 채식을 실천한다. 착한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만만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가 하면 만만하다는 평가를 받겠다는 생각이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성격은 그냥 평범하다. 다만 몸을 빼거나 게으르지도 않은데, 오히려 구멍 난 다른 이의 업무를 메우느라 고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가만히 있을 땐 당연하고 스스로 말을 꺼내도 그 공이 전혀 티 나지 않는 사람이다... 2021. 7. 19. 내가 만족하는 미니멀라이프 실천 2 - 잉여 옷 소비하지 않기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야 하거나 최신 유행의 옷이 간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위해 옷을 싹 정리한 후 나름대로의 옷 입는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고, 소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옷을 사려는 욕구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매일의 동선에 옷가게가 없어 구경조차 하지 못하게 된 탓도 있다. 부끄럽지만 SPA 브랜드 옷을 철마다 사는 습관이 있었다. 계절마다 유니클로의 세일을 기다려 엄마, 언니와 전투적으로 득템을 했다. 온라인으로 샀기 때문에 실패하는 아이템이 반드시 있었다. 옷장에 대충 처박아 두었다가, 박스에 넣었다가, 매몰차게 내다 버리는 게 루틴이었다. 아까워하지 않고 잘 버린다고 엄마와 언니는 감탄을 했다. 내 미니멀리즘 외침과 불매운동의 여파로 우리 .. 2021. 7. 7. 사랑하는 나의 일에 대하여 취준생 시절 자소서에 꾸준히 썼던 말은 '저는 직업이란 나를 기쁘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였다. 책을 읽다 단초를 얻어 정리한 직업관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다가 원치 않는 곳의 서류 합격 소식은 기쁘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내가 가장 가고 싶은 도서관을 직업의 자리로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내가 사랑하는 책이 있는 곳. 사서가 모두 책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서가 되고 싶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을 벌지 못하는 도서관의 자리는 좁디좁았다. 나는 돌고 돈 후에야 원하는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처음 책이 가득한 자료실 서가 사이에 섰던 날, 이 회사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과 함께 행복하리라 .. 2021. 6. 28. 내가 만족하는 미니멀라이프 실천 1 - 기념품 에코백 수선하기 나름의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한 후 자주 체감하는 심경의 변화는 남아있는 물건을 아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러 개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남겼거나 오래 고민해서 고른 최상품이니 그럴 수밖에. 매일 좋아하는 물건을 사용하는 셈이라 나를 늘 대접하는 기분이다. 나는 사랑받을 만 해. 예상치 못한 미니멀라이프의 장점이다. 짐을 줄이면서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에코백을 정리했다. 가볍고 커서 책을 들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이라 나는 매일 에코백을 맨다. 좋아하는 두께와 손잡이와 크기와 디테일이 나도 모르는 새 생겨났다. 너무 얇거나 흐물거리는 에코백은 가방을 위한 더스트백으로 쓰기도 하고, 당근마켓 거래 시 봉투 대용으로 넘겨드리기도 했다. 한때는 아무 에코백이나 쓰기도 했다. 어딘지도 모를 기관의 로고가 들어간 가방을 .. 2021. 6. 23. 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 4 - 비그린(B:Green) 예민한 편은 못 되는 난 다양한 플라스틱프리 제품에 큰 불만 없이 적응하곤 한다. 스테인리스 빨대에서 스댕 향이 난다고요? 대나무 칫솔이 뻑뻑해서 잇몸이 아프다고요? 여러 걱정을 안고 산 물건은 전부 문제없이 생활에 녹아들어서 이제는 여간하면 고민 없이 생필품을 바꾼다. 그런 내가 아직까지도 플라스틱 케이스를 포기하지 못하던 제품이 있었으니, 바로 립밤이었다. 하루에 몇 번씩 립밤을 바르는 습관이 있는 내게 종이 케이스가 밤 제형에 젖는다는 후기가 많은 멀티밤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처음 알맹상점이 생겼을 때와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 서울에는 제법 많은 제로웨이스트샵이 생겼다. 그중 무려 멀티밤을 알맹이만 살 수 있는 샵이 생겼다지 뭐야! 모나쥬의 멀티밤을 알맹이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 2021. 6. 14. 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 3 - 알맹상점 다시 가기 지난달에 알맹상점에 다녀왔다. 사실 지난 달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처음은 주말이었다. 남자친구에게 용기를 재활용해서 내용물만 사는 걸 보여주고 싶어 데이트 코스에 알맹상점을 넣었다. 이런 가게에 사람이 찾아오느냐는 질문을 들으며 계단을 올라서는데 우리 둘은 말을 잃었다. 찾아오냐고? 찾아오다못해 가게가 터질 지경이었다. 꾸깃꾸깃 비집고 들어가 밀랍과 나무 칫솔 몇 개를 샀다. 남자친구에게 플라스틱과 다를 바 없을 테니 써보라 쥐어주었다(한 달 간의 후기는 긍정적이었다). 두 번째는 작심을 하고 반차를 냈다. 평일 낮이니 혼자만의 여유로운 구경을 예상하면서 여러 용기를 챙겼다. 달그락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는데 이것 참. 작은 가게에 10명 남짓한 손님들이 올망졸망 서 있었다. 주말보다는 걸어다니기가 번잡하.. 2021. 5. 25. 이전 1 2 3 4 5 6 7 8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