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ING22 얘기를 하면 알 수가 있지 결혼을 하겠는걸 말이야. 2024. 3. 11. 자기혐오를 토해내는 재미 없는 이야기 바닷가에 서 있으면 주기적으로 파도가 밀려온다. 파도는 왜 칠까. 검색을 해 보기도 했지만 중력과 염도와 그 무엇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에 정확한 이해를 포기했다. 바다를 구경하노라면 멍을 때리다가 그저 생각하는 것이다. 파도는 왜 칠까. 어차피 같은 물인데 왜 밀려와서 부서지고 밀려나가더니 또 다가오는가. 자기혐오는 내게 파도처럼 다가온다. 이제 좀 나아졌나 싶으면 언제 부서졌느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밀려온다. 극복하려고 노력해 봐도 주기적으로 괴롭다. 자기혐오에 빠져들면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만 남는 걸 알아서 어떻게든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물에 젖은 솜덩이 같은 나를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까. 혐오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찾아낸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이 싫은데 반드시.. 2024. 2. 16. 1500이라는 숫자 난생처음 수국을 선물 받았다. 꽃집에 가면 늘 수국을 탐냈지만 선물로 한 종류만의 꽃을 고르기는 어려웠다. 나를 위해 꽃을 사는 건 익숙하지 않아 내내 바라만 보았다. 네가 건네준 꽃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수국에 대한 나의 갈망은 하나도 몰랐으면서. 네가 모르는 새 나의 마음을 채워버린 게 수국 하나 뿐은 아니었으니 그저 너는 너답게 행동했고 나는 나처럼 기뻐했다. 꽃집에서 야물게 작은 물통을 매어주었다. 만개한 꽃이 하루 종일 화사해서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너와의 1500일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할 줄 알았더라면 너를 처음 만나던 순간 더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밤톨 같은 뒷머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쓰다듬기 좋다. 흰머리를 하나만 발견해도 화들짝 놀랐었는데. 이제는 하나쯤은 .. 2022. 6. 20. 누워서 과자먹기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빌려온 책(주로 추리만화나 판타지)을 보며 과자를 먹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돌아보면 침대에 가루가 떨어진다는 잔소리를 하지 않은 엄마는 대단한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어쨌거나 신나게 과자도 먹고 저녁도 잘 먹었다는 그런 이야기. 요즘은 누워서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더이상 젊음이 건강을 채워주지 않을 때, 절제가 필요할 때 참게 된 작은 일이다. 목의 이물감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첫 위내시경을 받고 나서야 이름을 알았다. 먹고 누우면 신물이 올라오는 역류성 식도염이랬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먹고 눕는 자세를 하지 마세요. 넵 선생님. 운동과 건강관리 덕에 식도염은 사라졌다. 그래도 조심한다. 하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간식을 먹는 건 행복한 일이다. 충만한 삶에는 절제가 중요.. 2022. 1. 5. 갑분_꽃다발_타령 꽃이 갖고 싶다. 꽃다발이 받고 싶다. 한여름에 오래도 못 가겠지만, 실용적인 쓸모도 없지만, 그냥 꽃을 보고 싶다. 보면서 기분이 좋고 싶다. 남자친구여. 내가 이렇게나 꽃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나? 안다. 생일과 기념일을 지나치면서도 꽃다발을 주지 않길래서 기어이 내 입으로 꽃다발이 받고 싶다고 굳이 말을 했다. 그런데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모를지도 모른다. 급기야 내가 사서 준 적도 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 이쯤 되면 차라리 몰라서 못주는 편이 낫다. 모르는 걸로 해야겠다. 남자친구한테 원하는 게 많은 성격은 아니다. 내가 필요한 건 내가 사니 너는 구경만 하라는 쪽이다. 혼자 하는 쇼핑을 좋아해서 혼자 보고 혼자 산다. 이렇게 편한 여자친구인데 왜, 너는, 내가 유일하게 사달라.. 2021. 7. 28. 맥락없는 행운을 투척할 수 있다면 가끔 더러운 꿈을 꾼다. 1년에 몇 번이니 아주 가끔은 아니겠다. 구체적으론 똥이 나오는 꿈을 꾼다. 말도 안 되게 많이 싸기도 하고, 싸면 안 될 타이밍에 마려워 죽겠기도 하고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의 똥꿈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똥통과 있어도 냄새를 모르겠거든 이건 꿈이구나 하며 마음이라도 편해지면 좋으련만, 꿈에서는 필사적으로 으악 똥 똥 하며 황망해한다. 변비도 아닌데 왜 자꾸 꾸는지는 잘 모른다. 이런 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몇 년 전 친구가 똥이 나오는 꿈은 행운이라고 한 뒤엔 나도 싫지 않게 되었다. 은근슬쩍 로또를 사 보기도 했다(물론 당첨은 없었다). 혹시나 행운이 지나갈까 싶어 아침에 눈을 뜨면 설렜다. 날아다니는 꿈을 꾸지 않게 된 뒤로 내게 설레는 꿈은 똥꿈 .. 2021. 7. 1. 2020.12.12. - 13. 거대한 수성의 대사가 있는 곳 너와 긴 데이트를 했다. 평소에 겨우 10시간 남짓 만나고 헤어진다면 이번에는 무려 36시간을 함께했다. 10시간을 함께 있으나 36시간을 함께 있으나 같이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복만 3.6배쯤 더 커졌다. 조리가 가능한 숙소를 잡아서 신나게 장을 봤다. 뭐 별로 사지도 않았는데 10만 원이 금방 나왔다.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으려고 프런트에서 HDMI 케이블도 빌렸는데 와서 보니 내 노트북 잭과 맞지 않았다. 노트북으로 보자 싶었는데 그마저도 와이파이 보안이 어쩐다며 넷플릭스 자체가 차단돼서 결국 꺼졌다. 혼자였다면 시무룩했을텐데 너와 있으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먹기나 하자! 부칠 줄 모르는 전을 부치고, 후라이팬을 열심히 긁고, 처음 써보는 오븐을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이제와 생.. 2020. 12. 14. 2019.12.29. 12월을 마무리하는 사랑스러운 데이트를 끝내고 12월 마지막 주의 데이트는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취향을 저격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데이트의 내용은 비밀로 한다(늘 자세히 말한 것도 아니지만은). 집이 빈 틈을 타 남자친구가 집에 와 하룻밤 자고 갔다. 편안하고 따뜻한 데이트였다. 집이 빌 거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네게 신나서 말했다. 너는 벌써 한 번 집에 온 적이 있지. 토요일 낮에는 내가 약속이 있었던 터라 저녁 시간에 맞춰 선물처럼 네가 왔다. 저녁을 해 줄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난 너무 일찍 파스타 면을 불에 올렸다. 결국 면 2인분을 버리고(이런 적이 없는데!) 우왕좌왕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고. 네가 사 온 너무나 먹고 싶었던 딸기 케이크까지 먹으니 천국이더라. 겨울왕국 1편을 보면서 2편보다 낫다는 둥 시답잖은 이야기도.. 2019. 12. 29. 2019.12.16. 둔돌이랑 오래 행복해야지 내가 서운함을 토로한다. 너는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해 줄 말이 없을 정도로 스스로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한다. 반복되기만 하고 해결은 없으니까. 더욱 할 말이 없는 너는 우물쭈물하며 침묵을 지킨다. 나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는 이 침묵이 무거워 그만 집에 가자고 말한다. 패딩을 챙겨 입고 컵을 치운다. 명동이니 롯데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타야하는데 롯데백화점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나오는지 나는 모른다. 늘 그렇듯 네가 나를 이끌고 간다. 오른쪽 골목 끝에 백화점이 보이는데 너는 그대로 직진한다. 네가 내 손과 머리를 슬프게 쓰다듬고 있으니까, 나는 혹시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고 있나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아니다. 걸음을 멈춰선 너는 명동에.. 2019. 12. 16.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의 거리 요즘 차별을 이야기하는 책을 많이 읽는다. 일부러 의식해서 고르지 않는데도 자주 본다. 차별을 당하는 입장에서도 하는 입장에서도 자유롭지 않아 읽기 편안하지는 않다. 그래도 자꾸 불편해야 할 것 같다. 최근 두 권의 책을 읽었고 깊이 공감했다. 두 권 모두 요즘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자친구와 함께 고민하고 싶었어. 하지만 내 태도는 다르다. 하나는 읽자마자 남자친구도 보여주려 구입 했는데 나머지는 차마 보여주지 못하겠다. 사실 이 책을 읽었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을 확률이 높다. 너는 갈등을 싫어한다. 네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다. 그 범위는 나 혼자 정했다. 너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 노력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듣기는 하는 마음도 알고 있다. 그런데 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심지.. 2019. 10. 8. 위기를 넘어가자 남자 친구와 함께하는 삶의 시간이 길어진다. 나와 함께하자 말해주어 고마웠고, 혹시나 나를 떠날까 불안했던 시기를 지나, 함께 있음이 너무 편안해서 평생 이렇게 살리라 결심하는 시기도 지났다. 이제 나는 고민한다. 너는 왜 더 달리기에 몰입하지 않을까. 그렇게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계획을 대체 왜 세우지 않을까. 답답함이 커졌다. 너와 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대신 간간히 내가 감정을 터뜨리면 네가 내 말에 동의하며 나를 달래는 대화를 한다. 미안해. 미안해. 처음에는 내 말을 다 수용해 주는 너에게 대단함을 느꼈다. 어떻게 화를 내지 않지? 내가 분명 너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르는 말을 했는데도 이렇게나 차분하게 날 달래주다니. 하지만 내가 점점 지쳐간 건, 미안하다는 말로 정리된 네 입장은 내게 너.. 2019. 9. 9. 1주년이야 1주년! 5월 12일은 남자친구와의 1주년이었다. 끝을 생각하고 사귐을 시작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이어질 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니, 귀여우니 한 번 손 잡아볼까 했던 마음이 1년을 훌쩍 넘어갈 줄은 미처 몰랐다. 벌써 1년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네가 1년 전 손을 내밀었던 합정역에서 그때처럼 내가 탈 지하철을 기다리니 웃음이 났다. 너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럽구나. 네가 한 아름 안겨준 꽃을 바라보며 너를 바라보니 절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예쁜 걸 줘서 고마워. 앞으로 1년도 잘 부탁해, 하는 말에 너는 1년만? 하며 되묻는다. 자기는 20년을 부탁한다고, 내가 20년은 좀 짧다니까 금방 50년으로 바꾸는 너를 나는 많이 사랑한다. 내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1주년이지만 평범한 데이트를 했.. 2019. 5. 1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