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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162

[Book Review] 찰리와 함께한 여행 - 존 스타인벡(이정우 옮김) 1960년 한 미국 작가의 여행을 1965년 어느 번역가가 한국에 전했다. 멋진 관광지를 소개하거나 세련된 일화를 소개하지도 않지만 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1960년에 이미 할아버지였던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냐며 감탄한다. 멋지다. 존 스타인벡이 58세에 반려견 찰리와 함께 로시난테호(트럭)를 타고 미국을 일주한 여행기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과 여행하며 마주친 이들을 관찰한 이야기가 담겼다. 출판사에서 어느 정도 편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백인 남성이라면 으레 지닐 법한 꼰대적 기질이나 마초 성향이 엿보이지 않아 읽기에 편안하다. 우리가 산더미처럼 내다 버리는 물건이 쓰는 물건보다 많다. 바로 이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미국이란 나라의 생산이 가지는 대담무쌍한 풍요를 엿볼 수 있.. 2021. 8. 27.
[Cafe Review] 공간 the space 책읽아웃 제현주 작가 편을 듣다 김하나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좋아하지 않는 회사를 사랑해달라고 영혼을 소진하며 카피를 쓰던 때와는 달리, 책이 좋아서 열심히 책을 소개하는 지금은 다르다고. 맞다. 돈만을 위해 하는 일엔 영혼이 갈린다. 본질에 자부심이 있는 이를 좋아한다. 원하는 일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짝인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나의 선택이 그랬기에 개인적인 선호가 그렇다. 브런치에서 우연히 작년 말 카페를 오픈한 작가의 글을 읽게 됐다. 초보 사장님이 뱃심 좋게 코로나 시국에 문을 연 모습이 멋져서, 부드럽고 또 치열하게 일궈나가는 작은 세상이 좋아서 계속 읽었다. 읽다 보니 맛있다고 늘 자랑하는 사장님의 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카.. 2021. 8. 3.
[Book Review]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 - 쓰무라 기쿠코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번아웃이 온 주인공이 단기 일자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입을 빌리자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일을 그만뒀는데 그때부터는 고용센터에서 소개해주는 대로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꽤 일을 잘한다.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건을 혼자 발견하고 훌륭히 마무리한다. 스스로 잘났다는 칭찬도 못났다는 우울도 없이 담담하게 하루하루 일을 수행한다. 오래지 않아 그 일을 하지 않으리란 단기직의 특징 때문인지 주인공은 늘 일과 자신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1년의 단기 직업 체험이 끝난 후 그녀가 깨닫게 되는 건 아래와 같다.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대체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2021. 7. 23.
[Book Review] 다시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 야마시타 히데코 들어는 봤지만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던 단어 '단사리(斷捨離)'. 일본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부르는 말인가 보다 했는데 그 말을 직접 퍼뜨린 이의 책을 읽게 되었다. 미니멀에 관련된 책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하는 순간은 여전히 기쁘다. 기억해둘 만한 단상이 몇몇 있었다. 지금 우리는 물건을 스스로 골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제멋대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물건이 쌓인다. 호의로 사주신 커피 한 잔에는 일회용 커피컵과 빨대가 따라온다. 가루커피를 다 먹고 나니 단단한 유리병이 남는다. 한 번 써보시라며 칫솔세트를 받았다. 택배에 따라온 뽁뽁이는 몇 달째 새것처럼 서랍에 잠들어 있다. 모두 다 내가 쓸 일은 없다. 버릴 수도 없다. 질이 좋은 물건은 잘 처분하는데,.. 2021. 7. 20.
[Book Review] 요즘 애들에게 팝니다 - 김동욱 '90년생의 마음을 흔드는 마케팅 코드 13'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읽는 목적은 한 가지다. 잘 정리된 다양한 마케팅 사례를 한 눈에 보는 것. 직접 찾아보기 귀찮으니 떠먹여달라는 심보다. 밀레니얼의 특징을 적당히 정리하고 몇몇 브랜드를 알게 되겠지. 모르는 사례가 많았으면 하는 간단한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시작부터 독특했다. 본인을 드러내지 않고 사례를 나열할 법 한데 저자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트렌디하다 자부할 법 한데 꼰대라서 따라가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열심히 공부했고, 자신이 부족했던 점이 드러날 거고, 그러니 밀레니얼이 읽고 있다면 이전 세대의 생각은 이러하다고 비교하며 읽어보면 좋겠단다. 솔직한 글을 보니 조금의 꼰대끼가 보여도 참고 읽어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아주 재.. 2021. 2. 8.
[Book Review]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이과가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나면 쓸 수 있는 글의 표본이 아닐까 싶었던 이번 책. SF가 이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적은 처음이라 읽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그럴듯한 SF를 소재로 밀도 있는 핍진성을 보여주는데 실감 나게 현대의 문제를 짚어내면서도 감동까지 준다. 그 와중에 막막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거나 과학만능주의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아. 이 작가 뭐야! 천잰가! '광속불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책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도서관 예약 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예약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 놓은 글은 여기). 무려 10명을 기다리고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설을 읽지 않는 분석적 이과생이라고요? 오세요! SF는 싫어하는 문과 감수성 풍부한 문학인이라고요? 읽으.. 2021. 2. 3.
[Book Review] 한국이 낯설어질 때 서점에 갑니다 - 김주성 북한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지 궁금해서 집어든 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를 짚어주려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고민하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기준은 뭘까. 저자는 경상도 출신의 조부모님과 함께 일본에서 살다가 10대 시절 조부모님을 따라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교사도 하고 작가도 했다. 정확한 계기는 알 수 없지만 2009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에서 새터민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작가였던 이력을 살려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과 한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버무려 신문에 칼럼을 썼다. 이 책은 그 칼럼을 엮어 만들었다. 이 책은 매 꼭지의 책을 미리 읽어봤거나 내용을 알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페이지를 넘겨 책 제목을 발견하면 '오, 이 책은 어떻게 .. 2021. 1. 29.
[Book Review]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 김유진 경제 공부를 하며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환 주기가 있음을 배운다. 금값이 오르는구나, 원유가 떨어졌네, 주식이 급등하네, 채권이 비싸지네.. 비단 금융만 순환하는 것은 아닌지 고등학생 때 유명했던 '아침형 인간'이 다시 각광받는 현상을 본다. 진지한 것은 모두 오그라든다며 비웃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쿨하기 위해 안달이 났던 시절.(10여 년 전 지디가 오글거린다는 말을 귀엽게 해서 리포터가 꺄아악 좋아한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난다. 어느 학생복 CF 촬영 현장으로 기억하는데, 오글거린다는 말이 막 유행하던 시기라 '저 말 심지어 지디도 쓰네, 진짜 대세인가 봐'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유노윤호의 열정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무대에 절실한 무명 가수의 노력을 발견하고, 진지하다 놀림.. 2021. 1. 26.
[Movie Review] 도시인처럼(Pretend It's a City) 영화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는 내가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 때문이었다. 영민한 봉준호 감독이 그를 치켜세운 덕에 거장은 눈물을 글썽였고 미국인은 봉 감독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다고. 영화에 우매한 나만 '아, 마틴 스콜세이지라는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로구먼' 하고 넘어갔다. 이동진이 언급했던 이름 같기도 하네(안 했을 리 없지). 그런 그가 어느 여자 작가와 넷플릭스에서 다큐 시리즈를 찍었다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넷플릭스 다큐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감독까지 흥미롭다니. 다큐 내내 스콜세이지 감독은 오로지 웃는 진행자 역할이었지만 이만큼 개성적인 작가와 잘 지내는 사이라면 영화도 볼만할 성 싶겠다는 느낌이었다(거장이라는데 오만한 말인 듯 하지만 현재 나.. 2021. 1. 21.
[Book Review] 아무튼, 떡볶이 - 요조 '아무튼, 떡볶이'는 저자 요조가 어느 방송에서 말한 일화 덕에 처음 발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기가 이 책에 '떡정'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모두가 아는 단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강연에서 뜻을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고. 북토크에서 모두가 진지하게 떡정의 뜻을 듣는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지만 이해는 간다. 나도 떡정이라는 단어를 안지 몇 년 되지 않았다(미운 정 고운 정은 알지만 떡정이라니). 대신 나는 '붕가붕가'라는 단어를 스무 살에 배웠는데, 그 뜻을 모른 채 홍대 골목에서 붕가붕가!!!라고 크게 외쳐 대낮부터 친구를 몹시 당황하게 만든 기억이 있다.* *당시에 나와 친구는 언니네 이발관이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이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붕가붕가라는 이름이 '붕'이 들어가 귀엽다며 붕가붕가.. 2021. 1. 19.
[Book Review] 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 하완 한때 인생은 끝없는 싸움이라 생각했다. 인내하고, 한계까지 나를 밀어붙이고, 뭔가를 극복해서 승리를 거머쥐는. 뭐 대충 그런 게 인생이라 여겼다. 이제는 싸우지 않기로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도 않는다. 인생의 커다란 문제들은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맘에 안 들고 답도 없는 이 인생과 잘 지낼 수 있나 고민할 뿐이다. 하완 작가의 지난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고 극심한 감동을 했던 바(기록이 남아있다), 이번 책을 발견하곤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완 작가의 에세이는 여타 감성 에세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색다른데 특히 마지막 한 줄의 위트가 산뜻하다. 어디선가 읽었음직한 소확행의 장점에 대해 읽으며 심드렁해지려는 찰나 그러니 트와이스의 뮤직비디오를 .. 2020. 9. 21.
[Book Review] 진짜 공간 - 홍윤주 집을 정리하면서 공간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진다. 원래도 집순이었지만 한층 더 중증이 되었지. 누가 어디에서 이야기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만 믿고 덥석 읽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적 없던 공간에 대한 소개여서 굉장히 신선했다. 평생을 아파트 키즈로 산 내게는 더욱 그랬다. 책은 방 주인 인터뷰, 다양한 주택의 입면 관찰록, 실생활이 묻어나는 사소한 개발들, 비공식 건축물, 동네와 도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정형화된 공간이 아닌 공간 속의 사람과 삶에 밀접하게 존재하는 공간을 소개한다. 단 하나도 같은 공간이 없다. 그 모든 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개성이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는 몇 배 더 멋스럽다. 아래의 몇 구절을 통해 공간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읽.. 202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