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162

[Book Review]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김소민 무엇보다, 나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한 적이 없다. 사는 게 창피해서 읽기 시작한 책. 내 인생이 수치스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다가 내 맘 같은 제목을 보고 극약 처방이 되어주겠다 싶었다. 가벼운 젊은이의 에세이 정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깊었다. 나는 언제까지 나에게 함몰되어 있으려 하나. 한 마음챙김 수련에서 평생 가장 화났던 순간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 순간을 고르는 게 힘들었다. 너무 많으니까. 인간이면 분노할 이야기를 했는데 법사는 "그런데 왜 화가 나냐"고 했다. 열불 뻗쳐 설명을 보태는 중에 법사가 말했다. "당신은 한 번도 상처 주지 않은 사람처럼 말하네요." 내가 내게 했던 거짓말 중 가장 큰 거짓말을 들켰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로 며칠 째 마음 고생을 하던 .. 2020. 9. 1.
[Book Review]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 이나가키 에미코 미니멀리즘을 외치기 시작하면서 미니멀리스트라 스스로를 칭하는 많은 작가와 인플루언서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이렇게는 살지 못하겠다 싶기도 하고 이 생각은 나와 같구나 싶기도 했지. 그렇게 마주한 이야기 중 폭탄머리 이나가키 에미코의 삶에 대한 통찰은 단연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50대에 이런 생생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냉정히 말하자면 무언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를 잃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희생시키면서 예뻐지고 건강해지는 그런 일들이 정말로 가능할까. 지금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작은 욕망들이 모여 큰 덩어리로 불어나면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런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만 한다. 살림에 관심을 갖다 보면 점점 내 발이 땅에 닿는 기분이 든다. 내 일상을.. 2020. 8. 18.
[Book Review] 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했다. 실제로는 만나지 못할 다양한 사람들의 깊은 생각을 듣는 게 좋다. 에세이가 대 유행이 된 지금도 변함없다. 중년 남성 화자의 에세이에는 내가 참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다. 글에서 느껴지는 꼰대의 향기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게 한다. 대체 이걸 내가 왜 취미로 읽는 책에서까지 견뎌야 해? 자연스럽게 남성 작가의 에세이를 멀리하게 되어서 김정운 작가와 김영민 교수 정도의 신간만을 기다렸다. 새로운 작가를 우연히 발견하려 굳이 용기 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믿는 북튜버 겨울서점이 이 책을 추천해 지 뭐야. 평소에 신문에 읽는 칼럼도 눈여겨보았다니 더욱 믿을만하여 바로 읽었지. 첫 에피소드로 셰르파와 현지 가이드에게 점점 갑질을 하게 된 경험을 .. 2020. 7. 27.
[Book Review] 일과 독립된 '나'로 살아가는 법 호우! 가벼운 글을 써본다! 갑자기 왜 이러냐면 어젯밤 꿈에 누군가가 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걸 들었다 "걔는 너무 고민을 많이 해서 문제야. 힘을 빼야 돼." 힘이라니 요즘 제일 힘 준 곳은 블로그 뿐인데요 그래서 블로그 글을 힘을 빼고 써보기로 한다 (완벽한 논리) 예전에는 구어체 잘 썼는데 오래간만에 하려니 잘 안 되는 구만 . . 오늘의 주제는 책과 유튜브! 유튜브 영상과 함께 연상되는 책을 소개해본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고르고 보니 두 개 다 회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9번의 일, 퇴사하겠습니다) 1. 9번의 일 + MBC 다큐스페셜 '전봇대 가장(家長) - 희망퇴직 이야기' 작가의 상상력이 꾸민 내용이리라 믿고 싶을 만큼 주인공이 처한 사회적 현실이 끔찍한 책이었다 (원거리 발령, .. 2020. 7. 21.
[Movie + Book Review]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 아녜스 바르다의 말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특정한 문장과 부딪힌다. 어쩜 이 문장이 지금 내게 나타났을까 하며 횡단보도에서 갑작스레 마주친 양 깜짝 놀란다. 이런 우연을 겪으면 내가 읽는 책은 사실 하늘에서 수호천사가 내 상황에 맞게 내려주는 말이란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몇 달 전 '바르다가 만난 사람들'을 재미있게 본 후 바르다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교양 수업에서나 들었던 누벨바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는 그는 (나는 살아있는 줄도 몰랐던) 장 뤽 고다르의 집에 그가 좋아하는 빵을 들고 찾아갔었다. 고약한 프랑스식 농담인지 오랜 친구에게 고다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옛 친구를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흥분했던 할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글썽였다. 정수리 부분을 동그랗게 희게 남겨두고 바깥.. 2020. 7. 5.
[Book Review]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 - 정희숙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정리 관련 컨텐츠를 봤다. 처음에는 해외 컨텐츠를 많이 봤는데 넷플릭스의 '미니멀리즘'이나 이 다큐에 출연했던 미니멀리스트가 쓴 책들 모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도미니크 로로의 책도 당연히 봤지. 곤도 마리에 영상은 첫 편을 보고 포기했는데, 설레는 물건에게 내는 소리와 표정(한쪽 다리를 들고 뀨우? 같은 소리를 낸다)이 도저히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세요 정말. 국내에는 마땅한 컨텐츠가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유튜브에서 두 채널을 찾았다. 첫 번째는 쓰레기집 청소 업체인 클린 어벤저스의 채널(이 채널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어 영상은 첨부하지 않지만 언젠가 관련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두 번째가 정희숙 정리 컨설턴트의 .. 2020. 6. 26.
[Book Review]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 남인숙 I와 E의 경계에 있는 나는 진정한 자신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학교에 가기 전 자신의 성격을 생각해보라는 제안에 크게 감탄했다. 흠. 유치원에 다니는 내내 친구들과 말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불편한 줄도 몰랐다가 아빠참여수업 후 아빠의 말을 듣고(허리를 이렇-게 구부리고 혼자 앉아있더라나) 처음으로 태도를 돌이켜 보았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장선생님은 엄마 뒤로 숨는 나를 보고 차렷, 열중쉬어 자세를 본인의 성에 찰 때까지 가르쳤다(엄마는 저쪽에 계세요!). 지독한 I였다는 얘기. 이런 나도 20년을 훌쩍 넘는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을 겪고 나니 때로는 E000의 진단 결과를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대체로 E를 받다가 최근 I로 돌아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중, .. 2020. 6. 9.
[Book Review]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 박현선 당근마켓을 시작한 이래로 이틀에 한번씩은 거래를 하는 기분이다. 오늘도 무려 세 개의 덩어리를 들고 출근했다. 주말에는 처음으로 물건을 구매해보기도 했다. 오랫동안 살까말까 고민하던 물건인데 절반값에 새상품을 구입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중고 거래에 이리 열을 올리니 중고와 관련한 책을 읽어 보는 게 인지상정! 이 책에는 핀란드의 중고 문화에 대한 소개와 작가가 핀란드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중고 문화, 그리고 인터뷰가 담겨있다. 인터뷰 대상은 실제 중고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중고가게 이용자, 벼룩시장 행사 기획자 등으로 중고 거래 문화가 잘 발달한 사회의 실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핀란드는 사회 내 빈부격차가 적어 중고문화가 발달할수 있었다. 북유럽 국가 특유의 복지 덕분에 핀란드는 누구나 일.. 2020. 5. 11.
[Book Review] 잡지의 사생활 - 박찬용 고등학교 3학년 때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하는 장래 희망으로 '잡지 에디터'를 기입한 적이 있다. 늘 선생님 혹은 사서를 적었더랬는데, 고3이 되고 보니 사범대나 문헌정보학과보다는 점수가 좀 남는 게 아닌가.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던 '프로젝트 런웨이'와 '도전 슈퍼모델'은 패션과 화보라는 화려한 세계에 대한 나의 환상을 마구 부추겼던 터였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면 된다고 했다. 옷은 잘 모르지만 글은 좀 쓰고 싶어 하니 피쳐 에디터가 되어야지. 늘 고전적인 모범생이었던 내가 평소의 나를 탈피하고 적었던 그 꿈은 공식적으로 남아있지 않다. 파일로 정리된 생활기록부를 나누어주며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에 쓸데없는 것 써 놓은 사람은 내가 적당히 바꿨다"고 말했다. 나를 똑바로 보고 한 말이.. 2020. 5. 6.
[Book Review] 매우 초록 - 노석미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즈음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연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조용한 곳에서 홀로 수행하듯 살면 마음이 편안할까 궁금하다. 하지만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 딱 노석미 작가가 일구어낸 삶만큼의 고요를 원한다. 우연찮게 노석미 작가의 책을 읽은 후부터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담백한 삶을 소망할 때면 특히. 집을 짓고 이사를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나의 집은 이미 서울에서 한참을 강원도 쪽으로 나와 있는 즈음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강원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강원도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녔다. 마지막에 바다에 도착해서 바다를 보고 맛있는 게도 사먹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집이 많.. 2020. 4. 29.
[Book Review] 미루기의 기술 - 존 페리 코로나 덕분에 상당히 게을러졌다. 출근 외의 유의미한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지경으로 취미도 소소한 재미도 사라졌다. 시간을 보내고 보내고 보내다 보내는 시간이 숨을 옥죄는 기분이 들 때쯤 발견한 책이다. 작가는 철학과 교수인데, 교수가 일을 미루면 고통받는 위치에서 일하는 나는 가끔 발끈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즐겁게 읽었다. 미루는 사람의 성격을 유쾌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미루는 사람의 성격이 대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마감 시한이 촉박한 일을 중요한 일로 간주하기가 쉽다. (부지런쟁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마감 시한이 정말 촉박하게 느껴지는 건 정해진 날짜가 1-2주쯤 지난 뒤부터다.) 이보세요. 마감을 잘 지키는 건 부지런쟁이가 아니라 그냥 약속을 잘 지키.. 2020. 4. 21.
[Book Review]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 제스 베이커 몇 년 전에 작성한 블로그 글을 가끔 둘러본다. 지금도 유려한 문장가는 아니지만 몇 년 전 문장을 보면 참혹한 기분이 들어서 때때로 글을 수정한다. 편집 에디터가 바뀌고 수정이 편리해진 것도 한 몫 한다(티스토리 고마워요!). 어제는 2012년에 쓴 ‘뚱뚱한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구조’라는 글을 손봤다. 정말 솔직하게 쓴 글이어서 당시의 마음이 그대로 보인다. 오래간만에 집중해 읽어보곤 마음이 아팠다. 20대 초반의 나를 지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꼭 안아 줄 거야. 네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도 말해줘야지. 하지만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별로 기뻐하지 않을 게 뻔하다. 뭐야. 20대 후반이 되도록 난 살을 못 뺐어? 심지어 더 쪘어? 한심하다 진짜. 살 가치도 없네.. 2020.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