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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12. 늦게사 전하는 고마웠다는 말 언니가 결혼 날짜를 잡았다. 아직 서로 부모님을 뵙지도 않았지만 코로나로 혹시 내년 예식장이 북새통일까 걱정해 식장만 미리 잡았다. 어차피 양가 부모님이 반대하실 이유도 없어 선선히 모두 허락하셨다. 순서는 조금 뒤바뀌었지만 조만간 형부 될 분이 집으로 인사를 올 예정이다. 오는 사람도 떨리겠지만 기다리는 사람도 떨리는 일인지라 인사하는 날 어찌해야 할 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체로 우리의 체통(?)을 유지하자는 내용이다. 웃음소리와 목소리를 줄이자(처음부터 놀라게 하면 안 된다), 나는 다리를 쭉 뻗고 앉을 거다(말하다 보니 최소 세 명이 쭉 뻗을 심산이었던 것이 드러나서 그럼 사위도 뻗으라 하자는 쿨 결론) 등의 제안이 나온다. 몰라, 나는 체통이 없어! 이야기 도중 아빠는 엄마에게 사위.. 2020. 6. 12.
[Book Review]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 남인숙 I와 E의 경계에 있는 나는 진정한 자신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학교에 가기 전 자신의 성격을 생각해보라는 제안에 크게 감탄했다. 흠. 유치원에 다니는 내내 친구들과 말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불편한 줄도 몰랐다가 아빠참여수업 후 아빠의 말을 듣고(허리를 이렇-게 구부리고 혼자 앉아있더라나) 처음으로 태도를 돌이켜 보았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1학년 때 교장선생님은 엄마 뒤로 숨는 나를 보고 차렷, 열중쉬어 자세를 본인의 성에 찰 때까지 가르쳤다(엄마는 저쪽에 계세요!). 지독한 I였다는 얘기. 이런 나도 20년을 훌쩍 넘는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을 겪고 나니 때로는 E000의 진단 결과를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대체로 E를 받다가 최근 I로 돌아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중, .. 2020. 6. 9.
미니멀리즘 Part 3. 물건 줄이기 (아름다운가게 편) 올해 목표 중 하나로 방 안의 물건을 반으로 줄이기를 잡았다. 간결하고 단순한 삶, 너무 멋지잖아.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선택은 기증이었다. 기부가 하고 싶은데 선뜻 현금을 더 내기는 부담스럽던 차였으니 일거양득이렷다! 집안에 휘저으며 쓰지 않는 새 물건을 모으고 보니 크게 두 박스나 되었다. 가까운 아름다운가게로 들고 가려니 무거워서 혼이 났지만 나름 신이 났다. 주면서 신나기 쉽지 않은데 좋은 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더라고. 괜찮은 물건을 모았더니 산정된 기부금 액수가 제법 커서 방을 정리한다며 마구 버렸던 물건이 아쉬워졌다. 기증 과정에 별 게 없다는 걸 알고 나니 두 번째는 더 쉬웠다. 커다란 이마트 가방을 옷장에 넣어두고 오며가며 기증물품을 수집했다. 가게에 서너 번을 다녀오고서.. 2020. 6. 2.
2020.5.21. 날씨가 좋은 아침이었고, 평소와 같은 출근길이었다. 언덕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앞에 섰다. 버스가 2분 후에 오는군. 두리번거리는 나를 의자에 앉아계시던 백발의 할아버지가 좌우로 살펴본다. 아, 할아버지. 이 정류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죠. 제가 출근하는 대학교 학생들이 줄을 서는 위치가 정해진 정류장이랍니다. 저는 그 줄을 서기 위해 움직이는 거예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아무도 없고 저 혼자 괜히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다 이유가 있어요. 잠깐 돌아보셨던 할아버지는 이내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타지 않을 버스가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휘적휘적 버스로 다가간다. 할아버지가 키가 큰 분이셨네. 혼자 생각하는데 문득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응? 아디다스 .. 2020. 5. 21.
[Book Review]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 박현선 당근마켓을 시작한 이래로 이틀에 한번씩은 거래를 하는 기분이다. 오늘도 무려 세 개의 덩어리를 들고 출근했다. 주말에는 처음으로 물건을 구매해보기도 했다. 오랫동안 살까말까 고민하던 물건인데 절반값에 새상품을 구입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중고 거래에 이리 열을 올리니 중고와 관련한 책을 읽어 보는 게 인지상정! 이 책에는 핀란드의 중고 문화에 대한 소개와 작가가 핀란드에서 살면서 경험했던 중고 문화, 그리고 인터뷰가 담겨있다. 인터뷰 대상은 실제 중고가게를 운영하는 주인, 중고가게 이용자, 벼룩시장 행사 기획자 등으로 중고 거래 문화가 잘 발달한 사회의 실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핀란드는 사회 내 빈부격차가 적어 중고문화가 발달할수 있었다. 북유럽 국가 특유의 복지 덕분에 핀란드는 누구나 일.. 2020. 5. 11.
당근마켓 사용기 2 - 실전 거래를 위한 작은 팁(잘 팔리려면) (들어가기 전, 나는 대형 제품보다는 손으로 들고 다니며 거래할 수 있는 크기의 물건만을 교환해보았음을 일러둔다. 커다란 소파를 거래하며 용달까지 부르면 더욱 복잡한 상황이 생기겠지. 아득하여라.) 제품 소개 (사진) 1. 여러 상품을 한 번에 올릴 경우 상세샷 첨부 괜찮은 신발들이 올라와 둘러보는데 판매자와 발 사이즈도 맞고 발 모양도 비슷한 듯했다. 그런데 8켤레 이상을 떼샷으로 딱 한 장 올려두었더라. 신발 당 앞, 뒤로 한 장씩만 찍어 올려줘도 판단에 도움이 될 텐데 떼샷에 작게 있는 모양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다. 찔러보기 거절한다는 멘트까지 보니 다른 사진은 없냐고 묻기도 미안해서 지레 포기했다. 찍을 땐 잠시 귀찮겠지만, 구매 결정 전 추가 질문을 줄여줄 테니 판매자에게도 편한 일이다. 2.. 2020. 5. 8.
당근마켓 사용기 1 - 잠들어 있는 물건을 깨울 기회 올해 들어서 당근마켓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발견했다. 즐겨 보던 디에디트라이프에서 당근마켓 사용기 영상이 올라오고 당근마켓 대표의 인터뷰가 네이버 메인에서 보이더니만 회사 동기가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파는데 괜찮다는 평까지 했다. 소소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니 버림과 기증으로도 정리 갈증을 다 채우지 못한 내게는 신세계와 같았다.시청소감: 에디터B는 정말 대단한 소비러다 (그나저나 에디터B의 글은 참으로 재밌읍니다) 직거래에 대한 두려움을 뚫고 아마존 킨들을 올린 후 나는 벌써 열 건이 넘는 거래를 했다. 팔릴까 싶었던 물건이 한 시간 이내로 연락이 오고 당연히 팔리리라 생각했던 브랜드 제품은 며칠이나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신기하고 재밌다. 팔기에 미안한 물건은 무료 나눔도 많이 했다. 아름.. 2020. 5. 8.
[Book Review] 잡지의 사생활 - 박찬용 고등학교 3학년 때 생활기록부에 적어야 하는 장래 희망으로 '잡지 에디터'를 기입한 적이 있다. 늘 선생님 혹은 사서를 적었더랬는데, 고3이 되고 보니 사범대나 문헌정보학과보다는 점수가 좀 남는 게 아닌가.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던 '프로젝트 런웨이'와 '도전 슈퍼모델'은 패션과 화보라는 화려한 세계에 대한 나의 환상을 마구 부추겼던 터였고, 인터넷을 검색하니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면 된다고 했다. 옷은 잘 모르지만 글은 좀 쓰고 싶어 하니 피쳐 에디터가 되어야지. 늘 고전적인 모범생이었던 내가 평소의 나를 탈피하고 적었던 그 꿈은 공식적으로 남아있지 않다. 파일로 정리된 생활기록부를 나누어주며 담임선생님은 "장래희망에 쓸데없는 것 써 놓은 사람은 내가 적당히 바꿨다"고 말했다. 나를 똑바로 보고 한 말이.. 2020. 5. 6.
[Book Review] 매우 초록 - 노석미 마음에 휴식이 필요할 즈음이 되면 나도 모르게 자연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조용한 곳에서 홀로 수행하듯 살면 마음이 편안할까 궁금하다. 하지만 자연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 딱 노석미 작가가 일구어낸 삶만큼의 고요를 원한다. 우연찮게 노석미 작가의 책을 읽은 후부터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담백한 삶을 소망할 때면 특히. 집을 짓고 이사를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가 놀러 와서 같이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나의 집은 이미 서울에서 한참을 강원도 쪽으로 나와 있는 즈음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강원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강원도 골짜기 이곳저곳을 다녔다. 마지막에 바다에 도착해서 바다를 보고 맛있는 게도 사먹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집이 많.. 2020. 4. 29.
[Book Review] 미루기의 기술 - 존 페리 코로나 덕분에 상당히 게을러졌다. 출근 외의 유의미한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 지경으로 취미도 소소한 재미도 사라졌다. 시간을 보내고 보내고 보내다 보내는 시간이 숨을 옥죄는 기분이 들 때쯤 발견한 책이다. 작가는 철학과 교수인데, 교수가 일을 미루면 고통받는 위치에서 일하는 나는 가끔 발끈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즐겁게 읽었다. 미루는 사람의 성격을 유쾌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미루는 사람의 성격이 대체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마감 시한이 촉박한 일을 중요한 일로 간주하기가 쉽다. (부지런쟁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마감 시한이 정말 촉박하게 느껴지는 건 정해진 날짜가 1-2주쯤 지난 뒤부터다.) 이보세요. 마감을 잘 지키는 건 부지런쟁이가 아니라 그냥 약속을 잘 지키.. 2020. 4. 21.
2020.4.15. 올 봄은 쉽지 않구나 거의 한 달간 블로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기분이 아니어서,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할까. 간단히 근황을 정리해 둔다. 왜 말할 기분이 아닌지 정도는 말해둬야 미래의 내가 수긍을 해주지 않겠어. 1.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이 날씨 좋은 시절에 밖을 제대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은 정말이지 재앙이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 어느 지역의 괴담을 듣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내 주변으로 바짝 다가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하면서도 잠시나마 운동을 합법적으로 가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는 생각 정도만 했다(어째서 나는 돈을 주고 고통을 구입하는가). 이렇게 생활이 통째로 바뀌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다. 달리는 시간을 조금 늘려가던 참이었다. .. 2020. 4. 15.
2020.3.18. 3월의 넷플릭스 시청기 넷플릭스 구독을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이다. 평일 저녁이고 주말이고 약속은커녕 운동도 가지 못하니 시간이 한없이 늘어났다. 책만 보기도 지친 참에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14년 미국에서 넷플릭스를 써본 적은 있는데 한국에선 서비스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좋은 기억이었겠다 다큐도 보고 싶겠다, 핑계가 좋아 얼른 가입했다. 한 달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단다. 처음에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컨텐츠만 보고자 했다. 예술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봤다. 하지만 드라마 광고로 눈이 가는 본능적인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더라. 어느새 나는 오래된 영국식 아침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감정 소모도 생각도 전혀 필요 없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이미 방송된 시즌이 무려 8개다. 지금.. 2020.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