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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6

[Book Review]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 플러피모먼트(Fluffy Moment) 대책 없이 싱그러운 젊음은 어쩌면 헤어짐을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죽음을 배우고 빈자리를 느낀다. 억장이 무너졌다가 후회해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기억이 옅어져 아파하지 않을 나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 무서워도 쓸쓸해도 시간은 가고 일상은 흘러서 이제는 문득 담담한 나를 발견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뜻인가. 익숙하다고 괜찮은 건 아니지만. 슬픔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담은 플러피 모먼트의 첫 책 '개가 있는 건 아닌데 없지도 않고요'는 죽음 이후를 견디던 내게 실은 모두가 같은 아픔을 참고 산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때와 작가가 상실을 겪은 때가 몇 달 차이 나지 않았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마찬가지니까. 하나 다른 게 있다.. 2021. 11. 29.
2021.11.23. 억텐 노노 억촉 노노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올린다. 불현듯 떠올라 한 시간 안에 올리는 주도 있고 며칠을 생각해 정리하는 주도 있다. 쓸 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어디서건 교훈을 찾아보려 애쓰는 주가 가장 힘들다. 이번 주처럼. 늘 촉수가 발동하는 사람이 좋지만 억지로 촉을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전체를 관통하는 교훈 따위 없이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나 정리한다는 그런 이야기. 쓰다 보니 어투가 묘하게 옛날 사람 같네. 1. 마크 테토의 '일보일경'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겠으나 내 마음이 굳이 감응하는 것은 지금 내가 그 말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계획이 아니라 대응하는 삶'이란 말이 어불성설이라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게 맞다는 방향으로 마음이 돌았다. 여름쯤 언급했던 이동진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 2021. 11. 23.
2021.11.15. 이 방향이 아닐진대 이번 주말에도 서울 둘레길 중 한 코스를 돌았다. 5코스 중 석수역에서 관악산 일주문까지 오는 길이었는데 안내된 대로 딱 3시간 30분이 걸렸다. 둘레길이란 것이 본디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경로가 아니어서, 힘겹게 올라갔다 신나게 내려와도 흥이 나지 않았다. 이만큼 내려온다는 건 또 한참을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냐! 오르락내리락의 와중 한 줄기 빛은 나라에서 설치해준 데크였다. 데크는 나름의 경사가 있기는 해도 일반 길보다 훨씬 완만했다. 문제는 서울둘레길 표시가 그 데크가 아닌 옆의 일반 경사로에 붙어있었다는 점이었다. 충실한 규칙의 순응자는 표시가 없는 길로 가기가 불안하지. 데크와 영 멀어지는 듯한 경사로에서는 큰 결심을 하고 결국 다른 길이리라 믿고 경사로로 갔는데, 많이 멀어진다는 것은 많이 내려.. 2021. 11. 15.
2021.11.9. 예상하지 못해 더 기쁜 무엇 나는 오랫동안 주는 법을 몰랐다. 막내는 양보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다. 양보하려면 일단 손에 쥐어야 하는데, 대개의 막내는 손위 형제에 비해 힘이 세지도 민첩하지도 않다. 그래도 나의 언니는 착한 어린이어서 꽤나 동생과 잘 나눴다. 덕분에 나눠준 것을 받기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꼭 막내여서 주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니다. 애초에 남에게 별 관심이 없어 선물을 주는 일을 귀찮아했다. '안 주고 안 받기'가 제일 편했다. 무엇을 줄지 고민하기도 귀찮고 예상치 못한 지출도 싫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직접 고른 만 못한 것을 받기도 애매했다. 각자 원하는 걸 직접 사면 안 돼? 선물을 받을 이에게 직설적으로 갖고 싶은 것을 물었다. 설렘은 없지만 실용은 가득했다. 사실 지금도 이 방식을 선호한.. 2021. 11. 9.
2021.11.5. 새로운 길에 올라 헤메고 싶다 지금의 부서에서 일한 지 벌써 11개월 차가 되었다. 올해의 실장님은 사학을 전공한 학구파다. 책상에는 늘 온갖 책이 몇 겹으로 쌓여있다. 애서가로서 애서가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지만, 가끔 내게 학문을 권유하실 땐 당혹스럽다. 인사발령이 났던 첫 주에 실장님은 대학원을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셨다. 글쎄요. 일하면서 공부할 자신이 없어요. 여름에도 한 번쯤 물어보셨고, 지난달에도 그랬다. 점점 솔직히 대답했다. 현재 더 배우고 싶은 세부 전공이 없는 데다 대학원에 간 동기 모두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그럼에도 또, 이번 주에 대학원 이야기가 나왔다. 늘 그렇듯 거부의 말을 했는데 이번에는 모교 연구소의 온라인 세미나를 들어보라는 답이 나왔다. 무슨 세미나지? 찾아보니 지금의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다... 2021. 11. 5.
[Book Review] 뭐든 다 배달합니다 - 김하영 플랫폼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는 시대, 긱 이코노미가 증가한다던가 전통적인 형태의 노동자만이 노동자가 아니라던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매일 의자에 앉아있는 나는 혼자 도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N잡러라는 말은 유행이라 말하기도 무색하게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사회학을 전공한 기자였던 저자는 직접 세 개의 플랫폼 일자리를 경험해 책을 썼다. 책 전체에서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데, 한 개의 플랫폼만 겪었다면 느낄 수 없는 흐름을 세 개의 플랫폼을 묶어두니 쉽게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흐름은 딱 하나다. 기술은 똑똑하고, 인간은 기계의 효율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 '생각'이라는 것은 이미 인공지능이 다 하고 있고, 사람은 그저 인공지능의 팔다리를 대신한다. 물론 이미 로봇 팔다리가 나와.. 2021.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