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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31

[2021 서른] 5. 할까 말까 했지만 하길 잘했던 시도는 무엇인가요? 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어요. 속상한 일이 있어도 먼저 알아주길, 배려해 준 마음도 알아서 알아차려주길 원했어요. 그렇게 별 말하지 않아도 저를 다 아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제가 쿨해 보인다는 생각이 섞여있었습니다. 유치하게도요. 그러다 진심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좋으면 좋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가감없이 말해주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상대에게 저 혼자 마음을 감춰봐야 속상한 일만 늘어나더라고요. 진심을 말하지 않고 과한 배려를 한 후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서운해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게 무슨 속좁은 일인지. 쿨한 연인이 되고 싶으면서 남자친구에게 자꾸 수수께끼를 풀으라 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 2021. 2. 5.
[2021 서른] 4. 시련을 이겨낸 당신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보고 고민했어요. 힘든 일을 시련이라 부르면 더 힘든 기억이 될 것만 같아서요. 그러다 문득 오늘 아침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침을 먹으며 엄마가 미용실 원장님과 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취직 못한 아들의 고민 상담 이야기에 엄마는 취직도 힘들고 취직 후에도 힘들다고 대답하셨답니다. 몰래 회사를 그만두고 원룸에서 은둔해있을까 고민한 제 이야기를 하면서요. 저도 오래간만에 그때를 떠올렸어요. 지방의 어느 곳에 첫 취업을 했어요. 모두가 축하해주는 곳이었지만 저는 괴로웠어요. 입사 후 6개월쯤부터는 우울에 빠져들었습니다. 회사를 벗어나면 술이나 감기약을 먹고 쓰러지듯 잠만 잤어요. 그런데 제 취업 턱을 냈다며 행복해하는 아빠에게 차마 그만두겠단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저는 통장의 잔고를 헤아리고,.. 2021. 2. 4.
[2021 서른] 3. 지금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5가지는 무엇인가요? 얼마나 진중한 대상을 골라야 하나 고민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봤어요.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건 운동이에요. 순발력도 부족하고 공을 무서워하는 제게 끈기와 성실성으로 성과를 내는 헬스는 편안해요. 얼마 전 누군가 제게 헬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근육을 찢고 그 고통으로 근육을 키우는 걸 좋아하니까요. 근육통에 시달리다 맞는 말인 듯 해 엄청 웃었어요. 산지 2주쯤 된 컴퓨터를 좋아해요. 요즘 컴퓨터는 부팅이 눈 깜빡하면 되더라고요? 새삼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며 매일 저녁 그 앞에 앉아 뭔가 써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얗고 간결한 디자인이 제 방과 잘 어울려 볼 때마다 뿌듯해요. 물론 지금까지 가장 많이 쓴 용도는 YouTube와 Netflix 시.. 2021. 2. 3.
[Book Review]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이과가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나면 쓸 수 있는 글의 표본이 아닐까 싶었던 이번 책. SF가 이렇게나 마음에 들었던 적은 처음이라 읽으면서도 깜짝 놀랐다. 그럴듯한 SF를 소재로 밀도 있는 핍진성을 보여주는데 실감 나게 현대의 문제를 짚어내면서도 감동까지 준다. 그 와중에 막막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거나 과학만능주의적 태도를 보이지도 않아. 이 작가 뭐야! 천잰가! '광속불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책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도서관 예약 줄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예약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 놓은 글은 여기). 무려 10명을 기다리고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소설을 읽지 않는 분석적 이과생이라고요? 오세요! SF는 싫어하는 문과 감수성 풍부한 문학인이라고요? 읽으.. 2021. 2. 3.
[2021 서른] 2.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저는 사서로 일해요. 이번 직장은 벌써 4년 차네요. 사서라 하면 조용한 안내데스크에서 책을 읽다가 이용자가 책을 대출하려 하면 바코드를 찍어주는 사람으로 많이들 알고 계시지만 제가 하는 업무는 그와는 전혀 다르답니다. 요즘 저는 100년쯤 된 책이 가득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오늘은 그중 두 권을 다른 기관에 빌려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어요. 책도 좋아했지만 조용한데 각자 할 일에 집중하는 도서관도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했는데 책 좋아한다고 사서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관종(도서관의 종류)을 가리지 않고 경험해봤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책 꽂는 일만 했는데 나름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력이 쌓인 후엔 꽤 다양한 일을 할 기회를 얻었어요. 할수록 느껴지더라고요. .. 2021. 2. 2.
[2021 서른] 1. 당신은 요즘 당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나요? 대학 시절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제 인생을 정리하는 과제를 낸 적이 있어요. 20쪽에 달하는 긴 보고서였는데 몇 년에 한 번씩 열어보며 당시의 저를 떠올려보곤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잘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취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던 막막하던 시절이었죠. 그 보고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의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하며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줘요. 얼마전 오래간만에 그 보고서를 다시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마흔이 되면 무려 아이를 네 명(!)이나 낳고 업무적으로는 세계가 주목할만한 일을 해내고 그 와중에 건강 관리도 잘 하는 슈퍼우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써뒀더라고요. 20년 후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나봐요. 대신 10년 후, 그.. 2021. 2. 1.
[2021 서른] 0. '지금의 당신'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서른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제법 큰 도서관에서 일해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잠시 살아본 적도 있지만 사람 많은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제가 익명성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예요. 사서가 꼭 독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드물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서입니다. 게다가 사람 구경과 고요를 동시에 좋아하는 제게 낯선 이가 드나들면서도 차분한 이 공간은 참 소중한 곳입니다. 처음 이 직업을 갖게 된 후 책이 가득 찬 자료실을 둘러보며 ‘이 직장에서 내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끝내 행복할 것 같다’고 느낀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물론 여느 직장인처럼 퇴근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거북이의 코에 빨대가 들어간 사진을 본 후 환경을 신경 .. 2021. 2. 1.